[헤럴드광장] 같은 옷을 입는 사람들의 비밀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면 나는 아이폰보다 검정색 터틀넥이 먼저 생각난다. 그가 매일 입던 검정 터틀넥은 그저 평범한 옷이 아니었다.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직접 주문 제작한 것으로 한 번에 100벌을 맞춰 입었다고 한다.

터틀넥과 함께 잡스는 리바이스 501 중청색 청바지와 그레이 컬러의 뉴발란스 992를 신었다. 세 아이템의 조합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었지만, 그를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게 했다. 선택지를 없앴는데 오히려 브랜드가 됐다.

잡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시절 의도적으로 회색 혹은 네이비 정장만 입었다.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평생 흰 셔츠, 검은 재킷, 높은 칼라, 검정 선글라스를 고집했다. 누구보다 바쁜 인생을 살았던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사소한 것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결정 피로와 맞닿아 있다. 인간이 하루에 내릴 수 있는 질 좋은 결정의 수는 한정돼 있다고 한다. 무언가를 고를 때마다 그 판단력은 조금씩 소모된다. 잡스와 오바마는 그 원리를 알았고, 패션의 영역에서도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생기고 있다. 이 전략이 바쁜 유명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란 것이다. 패션 매체 마리 끌레르는 올해 초 젠지 세대의 패션 트렌드를 분석하며 ‘모던 유니폼’을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 결정 피로, 경제적 불안, 디지털 노이즈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대신,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스타일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트렌드를 쫓는 데 지친 사람들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유니폼 패션은 기호가 없어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취향이 무르익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잡스가 이세이 미야케의 터틀넥을 선택한 건 무심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옷을 입을 때 가장 나답고 편안한지를 아는 사람은 매일 새 조합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기준이 생기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옷장을 비우고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1착장’을 만들어보라 권했다. 그게 바로 나만의 유니폼을 찾는 첫걸음이다. 핵심 아이템 몇 가지를 중심에 두고 거기서 조금씩 변주하는 것이다. 그 조합이 흔들리지 않으면 옷장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고민하는 시간이 줄고, 그 에너지는 더 중요한 곳으로 간다.

선택지를 줄이는 것이 자유를 잃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는 반대다. 기준이 생긴 사람은 어떤 옷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사람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잡스의 터틀넥처럼. 스타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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