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시설 ‘100조 손실’ 초읽기…門 열어준 노란봉투법 도마 위 [삼성전자 파업 D-6]

삼성 “유연한 제도화 제안…조건 없이 만나자”
노조 “6월 7일 이후 협의 의사…헌법보장 권리이행”
파업 강행 방침에 ‘대화로 해결’ 물 건너가
정부 중재도 거부…긴급조정권 발동 촉각
‘성과급 투쟁 촉발’ 노봉법에도 비판 목소리
삼성 이어 유사 분쟁 확산…산업계 전전긍긍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회사 측과 정부의 대화 재개 제안에도 불구하고 “6월 7일 이후 협의 의사가 있다”며 이달 21일 총파업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김현일·이정완·박지영 기자]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회사 측과 정부의 대화 재개 제안에도 불구하고 오는 21일 총파업 강행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결국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삼성전자는 15일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지부(이하 초기업노조)에 보낸 공문에서 “회사는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 제도는 재원을 영업이익 10%와 경제적부가가치(EVA) 중 선택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성과급) 제도화, 상한 폐지 요구와 관련해서는 기존 OPI 제도를 유지하면서 추가로 상한이 없는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등 보다 유연한 제도화 방안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협상 타결을 바라는 임직원과 주주, 국민의 바람에 부응해 조건 없이 다시 만나 대화할 것을 거듭 제안한다”며 “회사는 열린 자세로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총파업 개시일까지 엿새 남은 가운데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이에 “6월 7일 이후 (회사 측과) 협의할 의사가 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잘 이행할 생각”이라며 사실상 대화를 거부했다.

기존 예고대로 다음달 7일까지 18일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을 멈추는 총파업 투쟁을 실시한 이후에야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 다시 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삼성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첫 파업이자 2024년 7월 이후 2년 만에 창사 이래 두 번째 파업을 겪게 된다.

‘파업 쇼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노조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30일이 경과할 때까지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없다.

다만 긴급조정권은 파업이 시작된 후에야 발동이 가능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손실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업종 특성상 파업 시작 전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처럼 삼성전자 임직원 성과급에서 비롯된 노사 갈등이 회사를 넘어 국가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혼란을 야기하자 이른바 ‘노란봉투법’도 도마 위에 올랐다.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노동조합의 강경 투쟁 일변도의 협상 방식을 제어하지 못하고, 기업의 대응 여력은 약화시켜 오히려 노사 분쟁과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화 제의 불구…노조 ‘100조원 손실’ 파업 강행


지난달 23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달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평택=윤창빈 기자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에 대화를 제안했으나 노조 측은 여전히 ‘성과급 제도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해 사실상 대화 재개는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직접 이날 오전 10시까지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전 대표의 회신은 없었다.

대신 회사 측이 오전 10시를 넘겨 재차 대화 재개를 제안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를 두고 최승호 위원장은 “공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도 오는 16일 사후조정 절차를 다시 이어가자고 노사 양측에 요청했지만 최 위원장은 “중노위는 중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을 닫았다.

반도체 업계는 노조의 공언대로 18일간 삼성전자 생산라인이 셧다운(가동 중단)될 경우 손실 규모가 최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어 국내외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파장은 클 전망이다.

앞서 회사 측은 중노위 사후조정 과정에서 경영실적에 따라 성과급 지급 규모와 방식을 달리하는 ‘유연한 제도화’를 제시했다.

중노위는 추가로 올해 국내 반도체 업계 실적 1위를 달성하면 영업이익의 12%를 재원으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에 특별포상을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DS부문 공통 70%, 사업부 30%로 나눠 메모리사업부가 더 많이 받는 구조다.

그러나 노조는 이를 “일회성 포상”이라고 규정하며 성과급 제도화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 연봉의 50%로 정해진 성과급 상한을 영구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란봉투법이 쏘아올린 삼성 ‘성과급 투쟁’


지난달 23일 오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 모습. 평택=윤창빈 기자


그동안 노사 교섭은 주로 ‘임금’과 ‘근로시간’에 초점을 두고 협상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번 삼성전자 사태는 초과이익의 배분을 둘러싼 ‘성과급’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 결과에 모든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학계와 노동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가 이번에 성과급을 콕 집어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노란봉투법을 꼽는다. 노조법 개정안 2조가 ‘노동쟁의’의 범위를 이전보다 확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올 3월 10일부터 시행된 노조법 2조는 노동쟁의에 대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 노조법이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으로 대상을 한정했던 것에 비춰보면 해석의 여지가 더 넓어진 셈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조법 개정안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쟁의를 허용하면서 이번에 성과급 문제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 이어 유사 분쟁 확산 가능성…산업계 전전긍긍


이번 삼성전자의 성과급 투쟁이 촉발한 노사 분쟁을 계기로 향후 산업계에서 유사 분쟁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송헌재 교수는 “확실히 (노조법 개정안이) 쟁의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라며 산업계의 쟁의행위 증가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미 재계에서는 노조법 개정안 시행 전부터 다양한 명목을 내세워 노조가 무분별한 쟁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삼성전자 노조 사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하청 노조들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노란봉투법 대응센터 공동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광선 변호사는 “사업 경영상 의사결정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경우 원·하청 모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쟁의행위가 늘어날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태를 계기로 경제계는 물론 국민의힘 등 야권에서는 노란봉투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 교수는 “시행한 지 몇 개월 안 됐는데 재개정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현실적으로 재개정보다는 모호한 규정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의) 해석 지침이 여전히 애매한 부분이 많아 이를 해소해야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며 “지침을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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