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파업 손실까지 떠넘겨…쿠팡 등 택배업계 ‘갑질계약’에 과징금 30억원

계약서 수년 늑장 발급…하도급법 위반 확인
공정위 “부당특약 삭제·90일 내 시정명령”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국내 주요 택배사들이 하청업체와 택배기사들에게 안전사고·파업 손실 책임을 떠넘기는 불공정 계약을 체결해오다 제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로젠 등 5개 택배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30억7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18일 밝혔다.

서울 시내 한 택배 센터의 모습. [연합]


이번 제재는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 90.5%를 차지하는 상위 5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부터 주요 택배사의 계약서 9186건을 조사한 결과 안전사고 책임 전가와 계약서 지연 발급 등 하도급법 위반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쿠팡 7억5900만원, CJ대한통운 6억1200만원, 롯데글로벌로지스 6억3300만원, 한진 6억9600만원, 로젠 3억7800만원이다. 이 가운데 부당특약 관련 과징금이 24억7800만원, 계약서 미발급·지연발급 관련 과징금이 6억원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택배사들은 영업점과 운송업체 등에 산업재해와 차량사고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을 전가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담았다.

고객 개인정보 유출이나 분실 사고에 대한 책임 역시 영업점에 부담시키는 사례도 확인됐다. 일부 계약에는 노조 파업이나 태업 등 쟁의행위로 인한 손실을 영업점이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히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안전사고 발생 시 변호사 비용과 보상비용까지 수급업체가 모두 부담하도록 했고, 한진은 산재사고와 안전사고에 대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영업점 측에 지우는 계약을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젠은 파업 등 단체행동으로 배송 차질이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조항을 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영업점에 전가된 비용 부담이 다시 택배기사들에게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계약 해지 조항도 문제로 지적됐다. 조사 대상 업체들은 ‘회사 이미지 실추’, ‘교육 미이행’, ‘앱 미사용’ 등 포괄적 사유만으로도 소명 절차 없이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공정위는 이를 표준하도급계약서 기준보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해지 조항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5개 택배사는 총 2055건의 계약에서 용역 수행이 시작된 이후에야 계약서를 발급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계약 개시 후 최대 761일이 지나 계약서를 발급한 사례도 있었다. 하도급법상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가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를 교부해야 한다.

공정위는 택배업계 전반에 계약서 지연 발급과 부당특약 관행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쇼핑 확대와 새벽배송·당일배송 경쟁 심화 속에서 대형 택배사들이 물류망 확대에는 집중했지만 수급사업자와 종사자 안전에 대한 책임 이행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는 택배기사 과로사 논란과도 맞물려 있다. 앞서 쿠팡 물류 하청업체 소속 기사와 영업점 소속 기사 등이 잇따라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노동계는 과로와 과도한 업무 부담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후 관계부처 합동 점검 과정에서 계약 실태 전수조사가 진행됐다.

공정위는 5개 택배사에 재발방지 명령과 함께 90일 이내 부당특약을 수정·삭제하도록 조치했다. 다만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심의 전 신규 계약서 교체를 완료해 별도의 수정명령은 받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택배사업자들이 사업 규모 확대에 비해 공정한 계약 관행 정착에는 소홀했다”며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지속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