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 퇴근길이 외로운 모두의 판타지, ‘심야식당’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할 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곳이 간절합니다. 불러낼 사람은 없는데,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도 고민스럽죠. 그럴 때면 익숙한 만화의 ‘심야식당’이 떠오릅니다. 홀로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어색함이 없습니다. 주인장은 말을 아낀 채 손님들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누군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쳐도, 피로가 몰려와 깜빡 졸아도, 주위 손님도 주인장도 모두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죠. ‘심야식당’의 메뉴와 분위기를 모방한 가게들도 있지만, 따스한 정서까지 흉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심야식당’(감독 마스오카 조지)은 외로운 현대인의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쿡방’(요리하는 방송) 전성시대, 심야식당의 음식들은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원작 만화와 드라마 팬들은 잘 알다시피 기본 메뉴는 돈지루(돼지고기와 야채를 넣은 된장국) 정식과 소주, 맥주, 사케가 전부입니다. 다만,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주인장이 솜씨껏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내놓은 음식도 집에서 뚝딱 만들 수 있을 만큼 소박합니다. 


비엔나 소시지의 끝 부분을 칼집 내 볶은 문어 소시지부터 달짝지근한 계란말이, 뜨거운 밥에 버터와 간장을 올린 버터라이스 등 누구나 먹어본 ‘집밥(반찬)’입니다. 사실 심야식당의 손님들에게 ‘뭘 먹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지 모릅니다. 여기서 음식은 그 자체를 음미하기 보다, 추억을 반추하는 매개체로서의 의미가 더 크죠.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이 담긴 음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븐이 없던 시절, 어머니가 프라이팬에 구워준 피자의 맛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보며 각자에게 특별한 음식을 떠올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영화엔 ‘나폴리탄’(토마토 소스에 볶은 스파게티 면을 불판 위에 올려내는 음식), ‘마밥’, ‘카레’ 등 세 가지 추억의 음식이 등장하죠. ‘나폴리탄’은 가난했던 다마코에겐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었던 고급 음식입니다. ‘마밥’은 힘겹게 도시 생활에 적응 중인 미치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고향의 맛이죠. 갑자기 닥친 재해로 절망에 빠진 남자 겐조에게, 카레는 한 자원봉사자가 내민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이들은 심야식당에서 만난 추억의 음식을 통해, 각각 사랑의 가치, 소중한 가족, 도움을 준 상대에 대한 고마움 등을 되새기며 심기일전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크리스마스 파티 중인 주인장과 단골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풍경입니다. 카메라는 창문 밖에서 훔쳐보듯 이 장면을 잡아내죠. 카메라의 시선은 심야식당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누군가의 시선과 일치합니다. 순간, 관객들도 식당 앞에 서 있는 손님이 된 듯한 경험을 하죠. “심야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실제 손님이 된 기분으로 영화를 즐겨주시면 좋겠다”는 주연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의 바람처럼, 영화의 온기를 통해 관객들이 헛헛한 속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길 바랍니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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