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 입주민들, ‘천한 직업’ 대하듯 갑질 일쑤
- 빈둥거리며 되레 갑질하는 경비원도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아파트 경비원이 출근ㆍ등교하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주장이 나와 경비원에 대한 ‘갑질’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부산 모 아파트의 갑질’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글쓴이는 “두 달 전부터 아파트 지하 2층 지하철 연결통로 출근길에서 경비원 할아버지들이 주민들에게 인사를 시작했다”며 “‘다른 아파트는 출근시간에 경비가 서서 인사하던데 왜 우리는 시키지 않느냐’고 입주자 대표회의가 불만을 제기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나이가 지긋한 경비원이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허리를 굽혀 깍듯하게 인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마치 회사에서 ‘높은 사람’을 모시듯 하는 인사는 성인 남성 뿐 아니라 교복을 입은 여학생에게도 똑같이 해당됐다.

해당 아파트는 두 달 전부터 출근 시간대(1시간)에 보안 카드를 찍지 않고 주민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면서 경비원이 입구를 지키게 됐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주민들과 서먹해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보안요원들에게 ‘인사를 잘해 달라’고 당부를 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인사를 강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은 “경비원은 감시단속 근로자이기 때문에 출근길에 나와 주민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도록 했다면 이는 ‘부당한 업무지시’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당하다는 걸 알아도 상당수 경비원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에 관리소장이나 입주자 대표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며 “최근 주민들에게 거수경례 등을 시키는 아파트가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사진설명>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한 경비원이 출근길 주민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주민들의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의 폭언과 멸시에 괴로워하다 분신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져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 8월엔 서울 청담동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반성문을 써오라고 시킨 일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지난달 30일에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수령 시간 문제로 분쟁을 벌이다 경비원이 입주자 대표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산 아파트 갑질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 경비원들을 아랫사람 부리듯 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저임금과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지적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에선 경비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주민 A씨는 “툭하면 자리를 비우기 일쑤고, 특별히 하는일 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 관리비가 아깝다는생각까지 든다”며 “나이 많으신 분이라 좀 친절하게 대하면 경로당 나온 동네 어르신처럼 잔소리에, 심지어는 갑질을 하는 경비원도 있다”며 못마땅해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업, 계층에 따라 위계와 권위가 강하게 작용하는 유교 문화의 정서적 경향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며 “이러한 인식 속에서 경비원을 ‘천한’ 직업에 속한다고 생각해 이들에게 과도한 권위를 부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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