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경영드라마 ‘라이프’가 비판하는 것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지난해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드라마는 tvN ‘비밀의 숲’이라 할만하다. 더도 덜도 아닌 꽉 짜인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JTBC 월화극 ‘라이프’는 ‘비밀의 숲’ 대본을 쓴 이수연 작가의 작품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이수연 작가 작품의 특징은 한가지 사건(에피소드)으로 시작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안들로까지 연결시키는, 마치 고구마 뿌리 캐듯 파고드는 깊이를 지녔다는 점이다.

‘라이프’도 그런 기대감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첫 방송부터 시청률 5%를 돌파하며 차원이 다른 웰메이드 의학드라마의 모습을 보였다. 1~2회에 비해 3~4회는 전개가 조금 산만해진 감은 있었지만 워낙 대본이 탄탄해 현실감과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있다.

‘라이프’는 의학드라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병원경영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고발적 모습을 보인다. 거칠게 보면 대기업에 인수된 최고 사립대학병원인 상국대학병원의 심임총괄 사장 구승효(조승우)의 논리와 이에 맞서는 응급의료 센터 전문의 예진우(이동욱) 등 의사들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나타나고 있고, 공장으로 따지면 물건을 만들수록 손해라고 판단하는 병원경영진단문제도 드러낸다. 각 병원에는 중요한 요소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심평원에 근무하는 예선우(이규형)는 유력한 차기 병원장 후보 김태상(문성근)의 무면허 의료행위 묵인의 결정적 증거를 밝혀낸다. 


구승효 사장의 논리는 자본의 논리다. 상국대병원 의사들 말에 따르면, 구 사장은 사람 목숨을 숫자로만 보는 인간이며, 뼈속까지 장삿꾼이다. 구 사장은 돈이 안되는 과(科), 예컨데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료학과는 퇴출 또는 규모를 축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 응급의료학과가 수익으로만 운영 여부를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이 상황에서 김태상 부원장의 무자격 수술, 대리수술, 동시수술 등 과잉수술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호소력을 갖는다. 1년에 5천6백명의 인공관절 수술은 말이 안된다는 것. 한마디로 수술 남발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함이다.

척추전문병원이 생기면 주위의 많은 노인들이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게 된다. 인공관절 유효기간은 10~15년이라 50대 중반에 이 수술을 한 사람은 60대 후반에 또 다시 받아야 하지만 현대기술로 재수술을 힘들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진주의료원 폐원을 연상케 하는 김해의료원 폐쇄 조치도 다뤘다. 이들을 길바닥으로 몰아낸 주된 이유는 재정적자였다. 매년 30억~40억의 적자가 났다. 이 액수는 경남도의 1년 예산인 약 12조원의 0.025%에 불과하다는 것. 흉부외과 전문의가 1년에 20명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흉부외과에 의사들이 오지 않는 것도 병원이 흉부외과에 투자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처럼 병원경영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의료농단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구승효 사장 논리는 무조건 악(惡)이고, 의사들의 논리는 무조건 선(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들의 폐쇄적인 문화도 까발려진다. 구승효 사장이 병원의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기 위해 의사들에게 인센티브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암센터 투약사고후 의사들에게 월 1회 진료기록 검사를 요구하고, 투약, 조제 사고가 걸리면 이름 까고 감봉 조치할 것을 지시한다. 쉬쉬하고 덮는 건 안 통한다고 한다.

구승효 사장은 이윤뿐만 아니라 의료와 퀄리티 둘 다 잡겠다는 말을 한다. 처음에는 무자비하게 구조조정 하러 온 것 같았던 구승효 사장에게 오히려 기대가 생긴다.

구승효 사장을 체내(병원)에 침입한 ‘항원(antigen)’, 여기에 맞서는 청년의사인 예진우를 항체(antibody)’로 비유한다. 이 둘의 면역반응, 화학반응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판단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방향을 잡기 어렵기도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그렇게 고민하고 숙고할 가치가 충분한 사안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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