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VISION] (28) CJ Tech 컨스트럭션 최재면 사장


▲ 한인 건설업체 가운데 중상위권에 속하는 CJ텍은 기술력과 성실한 시공으로 두터운 크레딧을 쌓고 있다. 최재면 사장이 CJ텍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였던 다울정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있다.  사진 / 김윤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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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텍 컨스트럭션은 허다한 건축 시공회사 가운데 하나이지만 최근들어 성장속도가 매우 빠른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2년전까지만 해도 공사 수주규모가 연간 100만달러에 불과했던 영세업체였다. 지난해 200만달러의 매출 외형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100% 신장하더니 올해들어서는 무려 500% 늘어난 1천만달러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연방정부가 중소업체들의 경쟁력을 위해 마련한 특별 조달프로그램인 SBA 8(a)에 의존하는 만큼 규모면에서는 아직 소기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8년 동안 LA통합교육구(LAUSD)나 시 정부의 공사를 주로 맡아 처리해오면서 이른바 공공시설 공사(Public Works) 전문회사로 경험을 축적하고 기술을 공인받으면서 서서히 민간 공사(Private Works) 부문에서도 알토란같은 실적을 채워가고 있는 신흥 건설회사이다.

무엇보다 CJ텍은 LA한인사회의 상징물로 우뚝 솟아 있는 코리아타운 올림픽거리의 다울정 공사를 통해 톡톡히 크레딧을 얻었다.그로부터 올림픽가의 쇼핑명소인 ‘김스전기’부속건물 공사를 수주, 그동안 공공시설 공사에 치중했던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2년에 파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어차피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없는 막다른 길목에 빠진 처지였기 때문에 버텨냈지요. 벼랑 끝에서 죽을 각오로 빠져나온 보람과 결실을 이제 보고 있다고나 할까…”

CJ텍 최재면 사장은 눈가에 깊게 패인 잔주름에 웃음기를 담아낼 정도로 여유를 풍긴다. 하루 하루 먹고 사는 만큼 빚이 늘어나던 참담하던 시절의 보상이 다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어렵게 꾸려온 회사가 초고속 성장의 쾌감을 맛보고 있기에 이젠 번듯한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 신용이 힘

최사장은 97년에 회사를 만들었지만 경찰서나 학교 건물의 페인팅이나 골조 공사 하청업 등으로 근근히 명맥을 잇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LA통합교육구 등으로부터 학교시설 보수공사 등을 조달받으면서 틀을 다져나갔다. 한국에서 대기업 산하 건설회사 경력으로 설계나 기술력 인력조직 등에서만큼은 뒤질 게 없었지만 건축시공사로서 대형프로젝트를 맡을 만한 자본의 열세 탓에 공사채권 한도액 규모가 달려 소규모 관급공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3년여 동안 60여건의 각종 학교시설과 공공건물 리모델링및 시절보수 공사를 수주하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공사기간과 가격 등을  철저히 지켜 성실하게 마무리짓는 정도경영과 원칙운영으로 믿음을 얻으면서 시나브로 크레딧을 쌓아나갔다.

“공사금액이 크건 작건 일단 일을 맡으면 깔끔하게 마무리짓는 걸 무엇보다 철저하게 지켰지요. 그래야 없는 살림에 장래가 보장될 테니까요.”

당장 아쉽다고 손에 쥐는 것이 탐나 고객을 속이면 그나마 어렵게 따내는 공사마저 끊긴다는 생존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지만 “엔지니어 출신이라 그런지 체질적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최사장이다.

“밑질 때나 남을 때나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신용을 지켜야 합니다.”

회사가 어려웠을 때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결국 고객으로부터의 신용이었다고 강조한다.

 ■ 다울정 공사로 이름 알려

CJ텍이 공공기관 공사를 주로 맡게 된 것은 95년에야 미국에 건너온 최사장의 짧은 이민경력 탓에 로컬사회에 별다른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어를 잘하길 합니까, 돈이 있기를 합니까. 공공기관 공사는 모든 과정이 문서로 이뤄지더군요. 기술력이 있었으니 문서작성 능력만 있으면 됐거든요. “

착실한 페이퍼워킹을 통해 공공건물 공사 과정을 처리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기존 한인업체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조직에서 근무했던 20여년의 실무경험이 커다란 자산이었음은 물론이다. 국내외에서 대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이 밑바탕이 돼서 얼마든지 퀄리티 높은 공사를 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공사채권 한도액을 키워나가 보다 규모있는 입찰을 따내고 실력있는 기술자 를 골라내는 안목으로 회사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2004년 다울정 공사를 맡게 된 것은 그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일이다.

“다울정 공사에 입찰했을 때는 미국회사 한곳과 한인업체 네곳이 경합했지만, 퍼블릭 공사를 많이 했던 우리 회사의 크레딧이 인정됐지요. 회사 입장에선 결코 수익성 있는 공사는 아니었지만 한인사회에 기부하는 셈치고 달라붙었지요. “

다울정이 완공되면서 CJ텍은 한인커뮤니티에 비로소 이름을 알리게 된다. 아울러 김스전기 확장공사를 따낸 계기도 됐다.

“결과적으로 회사가 알려지고, 커뮤니티에서도 실력을 인정한 셈이니 다울정 공사는 여러모로 보람이 있었던 거지요.”

 ■ 경쟁력 있어 도약 자신

최사장은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4명의 스탭 매니저들을 둔 CJ텍이 어느 한인업체 못지 않은 기술력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공사채권한도액도 어느덧 150만달러 규모로 키워졌다. 물론 회사가 대표적으로 내걸만한 규모 있는 빌딩 공사를 하기엔 모자라지만 1~2년 안에 마켓이나 호텔같은 시그너처 건축물을 코리아타운내에서 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한인 건축업자들 사이에서는 건설업에 빙하기가 올 것이라는 살벌한 얘기들이 오고 간다. 그러나 최 사장은 크게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다.

“민간부문 공사가 힘들어지면 경쟁력없는 업체들이 정리될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 한인 건축·건설업계는 전환기를 맞을 겁니다. 공공 공사는 비교적 꾸준하게 이뤄지는 만큼 이 분야에서 톱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 회사로서는 일정량이 보장되는 조달공사에 곁들여 민간공사를 덧붙이면 성장단계가 한차원 높아지겠지요.”

위기를 신용으로 극복한 경영자이기에 그럴까. 최사장은 다가올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놓고 두려움은 커녕 도약의 희망을 더 키우고 있다.

■ 최재면 사장은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1년 정도 설계사무소를 운영한 뒤 진흥건설과 럭키개발 금호건설을 거치며 설계와 현장감독 경력을 쌓았다. 진흥건설 시절 해외건설부에 있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미군기지 공사에 참여했고, 럭키개발 시절에는 여의도 LG트윈타워 설계와 조감독 업무를 맡았다. 건강문제로 95년 이민, 96년 신장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건강을 회복하면서 LA에 기반을 두고 건축사업을 재개했다. 97년 장모씨와 공동으로 창업해 각자의 성씨 이니셜을 딴 CJ테크 간판을 내걸었다.


황덕준 / 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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