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빵집 효자‘카스테라’애물단지로…

원재료 70%가 계란인 국민간식

AI파동에 달걀가격 3배 직격탄

팔면 팔수록 손해 ‘울상’

가격올리면 손님줄까 전전긍긍

“부들부들하면서 달달한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인기폭발이죠. 그런데 요즘 우리 사장님은 저를 볼때마다 자꾸 한숨을 쉽니다. 저도 덩달아 슬퍼져요. 제 이름은 카스테라입니다.”

원재료의 70%가 계란으로 이뤄지는 국민간식 카스테라. AI(조류인플루엔자) 파동에 계란이 ‘금(金)란’이 되면서 동네빵집 효자상품인 카스테라가 졸지에 ‘애증의 자식’으로 전락했다. 


계란 원가 3배 가까이 올라=“가장 저렴할때 4000원대로 공급받던 계란 한 판이 요새는 1만1000원이에요. 도매업자는 한판에 1만5000원까지 올라갈 각오(?)를 하고 있으라네요. 요새 정말 죽을 맛입니다.”

서울 상암동. 아파트 단지와 상암 중학교, 각종 학원이 밀집된 동네 어귀에서 3년째 ‘빠띠시에’라는 빵집을 운영하는 최성혁 대표의 말이다. 경기불황에 사상 최악의 AI가 전국을 덮치면서 제과ㆍ제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울고 있다면 동네빵집 주인의 눈물은 통곡에 가까울 지경이다.

“원래 도매업자에게 수시로 계란을 주문하고 월말에 정산을 했어요. 그런데 AI가 터지면서 즉시 현금으로 돈을 넣어주지 않으면 물건을 못준대서 어쩔 수 없이 소량이라도 주문을 넣고 바로 돈을 부쳐요. 그런데 이것도 어려워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여러군데서 계란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계란을 받아야죠. 저희도 빵 팔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최 씨의 토로다. 이처럼 울며겨자먹기로 계란을 구입하고는 있지만 도매처에서도 공급이 원활치 못하다. 지난 3일까지 AI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 메추리는 3036만 마리에 이른다. 피해는 산란계(2245만 마리)에 집중됐다. 전국에서 사육 중이던 산란계 가운데 32.9%가 살처분됐다. 

상암동 한 동네빵집 주인이 마감 전 남은 빵들을 바라보고 있다.

카스테라 단체주문, 두려워요=“저희 가게 제일 잘 나가는게 카스테라에요. 카스테라에는 다른 빵보다 계란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지금 72g짜리 카스테라를 1600원에 팔고 있는데 전보다 마진은 엄청 줄었죠. 손님들이 계란 귀한 걸 아시고 요즘따라 유독 카스테라가 더 팔리는 경향도 있어요. 요새는 카스테라 100개가 단체주문 들어오면 덜컥 겁부터 나요. 맘 같아선 다른 걸로 고르셨으면 한다니까요.”

근처에 학교와 학원가가 즐비한 이곳에서 카스테라는 1등 제품이지만, 최 씨는 계란값이 오르면서 팔수록 손해가 난다고 했다. 동네에서 오며가며 얼굴보고 인사하는 단골들이 주고객인지라, 빵값을 바로 올릴 수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200g짜리 고급 카스테라를 내놓았다. 예전 같았으면 3800원이 적정선이었겠지만, 4500원 가격표를 붙였다. 동네빵집에서 아무래도 ‘비싼’ 축이라 반응은 예상대로 신통치 않다.

맛집으로 소문난 종로구 통인동 ‘효자베이커리’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이곳 한 관계자는 “AI 이전보다 만드는 빵의 양 자체를 줄였어요. 원래 그날 팔고 남은 것은 단체를 통해 기부했는데 요즘은 잘 못하고 있네요”라고 했다.

▶계란 수입이요? 글쎄요=천정부지 계란값에 정부는 신선란 7억개에 관세를 매기지 않고 수입하기로 했다.

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신선란ㆍ계란액ㆍ계란가루 등 8개 품목 9만8000t에 긴급 할당 관세를 적용해 기존의 8∼30%였던 관세율을 0%로 낮춰 수입한다.

정부가 지난 연말 설명회에서 제공한 ‘계란 해외 유통 및 가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수입이 가능한 미국ㆍ스페인ㆍ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의 현지 계란 도매가격은 1개당 89~172원(12월19일 환율 기준)으로 국내 계란 도매가격 250원보다 30~65%가 싸다.

그러나 항공편 운송비와 계란의 파손을 막기 위한 부대비용을 추가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제빵업계에서는 수입을 해서라도 계란을 받아야한다는 입장이지만, 동네빵집에서는 국내란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진다면 차라리 당분 간 문을 닫는 게 낫다는 입장도 있다. 또 재료가 바뀌면서 기존의 맛과 달라질 경우 매출 타격이 올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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