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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방송된 KBS-TV ‘아침마당’에 출연한 가수 인순이는 꿈이 수녀였지만 월급이 적어 포기했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가수가 됐다고 했다.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그녀는 오는 9월 데뷔 40주년 기념 디너쇼를 열 예정이며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학교’ 건물을 신축하고 학력인정 학교로 승격받을 계획도 밝히는 등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해밀학교는 4월 18일 오후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 옛 용수분교 터에서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축교사 준공식을 가졌다. 다문화 1세대로 살아온 경험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히트곡 ‘거위의 꿈’의 내용처럼 계속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그녀는 2015년에는 보디빌더 대회에 출전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1년 가수 윤도현이 진행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지친 당신에게 힘이 되는 절대음악’을 주제로 갤럽과 네이버 미투데이를 통해 대중이 직접 선정한 노래 100곡과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영예의 1위곡을 발표했다. 그 결과, 전 세대에 걸쳐 가장 힘이 되는 곡은 ‘거위의 꿈’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 곡은 20~40대에서 고른 1위를 차지, 세대를 뛰어넘은 명곡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당초 ‘거위의 꿈’ 은 이적과 김동률이 불렀는데 그다지 히트를 못했고 인순이가 리메이크,수화와 함께 부르면서 이런 결과까지 얻는 최고의 노래가 되었다. 이적과 김동률의 ‘거위의 꿈’ 보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우리네 마음에 더 와닿는 것은 아마도 굴곡진 인순이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같아서 일 것이다.
2002년 가을쯤인가? 미국에서 2년여 동안 재즈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준비 중인 그녀를 만났다.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때처럼 변함없이 밝고 순수하고 착한 모습으로 다정하게 대해준 것은 물론, 미국에서 사는 필자의 고충을 위로해주고 ‘한국에서 빨리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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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며 헤어졌는데 필자는 그녀의 행복한 모습에서 남편과 딸 세인이가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그리도 행복해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아픔을 딸이 겪을 수도 있겠으나 그녀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이 있어 세인이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우한 가정 형편 때문에 ‘노래 부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한백희(당시 몇 안되는 대규모 기획사 사장)씨에게 이끌려 ‘희자매’라는 3인조 여성그룹으로 가수 데뷔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특성 때문에 멤버 중에서 혼자만 화제가 되었을 뿐, 기대만큼 인기를 누리지 못하자 기획사에서는 인순이의 백댄서였던 김완선을 가수로 성공시키기 위해 주력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솔로로 독립을 하였고 ‘김인순’ 이라는 본명 대신, ‘인순이’라는 예명으로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워낙 가창력이 뛰어난 그녀는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 얼마 안돼 가슴이 확 트일 정도의 성량, 파워 풀한 댄스 실력, 관객을 휘어잡는 무대 매너로 대중들에게 실력 있는 가수라고 인정받으며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필자가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밤이면 밤마다’라는 노래가 한창 히트하고 있을 무렵인 것으로 기억된다. 한 행사장의 무대 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언니, 동생’이 되었고 이후 줄곧 필자가 기획하는 이벤트에 단골로 출연해주며 친언니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스케줄이 바쁠 때라도 필자의 출연 요청을 언제나 받아들여 줬고 어쩌다 개런티가 잘 맞지 않을 때도 출연해주었다.그런데 그렇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마음도 착한 그녀가 지난해에 또 탈세니 뭐니 자꾸 구설에 올라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녀가 갑자기 이런 일에 휩싸여서, 기운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만 ‘거위의 꿈’이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것처럼 또 다시 극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까지나 화려한 여가수’이고 싶은 인순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꿈을 이루면서 다른 곳을 보던 팬들이 다시 한 번 나를 보게 하려고 각양각색의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라며 맹활약 중인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은 어쩌면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는 4개 국어에 능통한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딸 세인이와 묵묵히 그녀의 도전을 지지해 주는 남편이 곁에 있기 때문이리라. 데뷔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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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카 박(Elika Park·한국명 희성)씨는
1982년 ‘영 11′이라는 MBC-TV 쇼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데뷔.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연예 관련 칼럼과 뒷얘기를 썼다.1990년대 후반 LA에 정착한 후에도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집필활동 중이다. 서울예대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