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중간재 수출 비중 50% 이상 차지
“미 경제 기여도, 협상 지렛대로 활용을”
트럼프 2기 정부가 20일(현지시간) 공식 출범하며 산업 정책 변화와 통상 압박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우리 기업의 미국 제조업 기여도를 협상의 지렛대로 내세워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해외 투자 금액 중 절반 가량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갔고, 역대 최대를 기록한 대미 수출액 가운데 원자재나 부품 등 중간재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20일 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집권했던 2017∼2020년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150억달러 안팎을 기록했다가 바이든 행정부가 시작된 2021년에는 두 배 가까이로 늘어 279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후 2022년 295억달러, 2023년 280억4000만달러, 지난해 1~3분기 162억7300만달러 등을 나타냈다.
한국의 해외 투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트럼프 1기 20%대였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2021년 36.3%, 2022년 36.1%로 급증했다. 2023년에는 대미 투자 비중이 글로벌 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 43%까지 늘었다. 이는 1988년 이후 최고치다.
이처럼 한국이 미국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미국이 주요 산업 공급망을 동맹 등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 공유하는 정책을 펼친 데 따라 한국기업들이 호응한 결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반도체 공장,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애리조나 배터리 생산 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현황과 경제적 창출 효과’ 보고서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시하는 첨단산업 육성과 기후변화 대응,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조하는 제조업 강화와 무역 불균형 해소 모두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첨단제조 기업들이 미국 내 수십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미국으로의 수출액도 덩달아 늘었다. 대미 수출액은 2017년 686만1000만달러였다가 지난해 1278억달러로 전년 대비 10.5%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7∼2020년 680만∼740만달러 안팎을 오가던 대미 수출액은 2021년 959억달러, 2022년 1097억달러, 2023년 1157억달러로 7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미 수출을 가공단계별로 살펴보면 1차 산품, 중간재, 자본재, 소비재 중 중간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대미 중간재 수출 비중은 2017년 49.4%, 2018년 54.1%, 2019년 55.3%, 2020년 55.4%, 2021년 57.8%, 2022년 60.4%, 2023년 50.1% 등으로 트럼프·바이든 행정부 내내 절반을 넘겼다.
중간재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 필요한 원자재나 부품 등을 의미하며 자동차 부품,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철강소재 등이 대표적인 중간재로 꼽힌다.
한국이 미국의 제조산업에 필수적인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제조 강국인 한국이 미국의 첨단산업 공급망 경쟁력에 기여하고 있으며, 산업 ·경제에서 한미 양국의 상호 의존성이 높다는 의미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대 한국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에서 적자를 보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양국이 경제안보 동맹으로 상호 이득을 누리고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에 따른 설비 수출도 증가했지만 순수 미국 회사로의 중간재 수출도 늘었다”며 “미국의 제조업 부흥 정책이 한미 양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으며,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한미가 서로의 ‘굿 파트너’임을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각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문숙·양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