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세금 유럽 30%, 韓 10%인데…한국만 콕 집은 트럼프 [트럼프發 관세쇼크-자동차]

대기환경보전법 등 각종 규제까지 거론
‘사실상 수입 1위국’ 韓완성차 집중공격
전문가 “협상으로 정책 불확실성 줄여야”


미국이 4월부터 자동차 분야와 관련 상호관세를 넘어 부가가치세와 환경규제 등 ‘비관세 장벽’까지 정조준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미국공장 생산라인 모습 [현대차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부터 자동차 분야와 관련 상호관세를 넘어 부가가치세와 환경규제 등 ‘비관세 장벽’까지 정조준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압박하고 나섰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현지에서 실질적인 세금이 추가 부과될 경우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현행 대비 10%의 세금이 오르면 우리 완성차 업계가 수조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18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사전 브리핑을 통해 “무역 상대국의 관세는 물론 부가가치세(VAT) 등 관세 외 세금, 산업 보조금과 각종 수입품 규제를 반영해 상호관세 세율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양국에서 생산된 완성차는 무관세로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백악관이 상호관세 이외에도 다른 종류의 세금까지 합산해 ‘관세전쟁 전선’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가 초긴장 속에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다.

▶부가가치세까지 정조준하는 트럼프 행정부=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부가가치세 문제를 실제로 거론하면서 “상대국들이 미국에 막대한 세금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조세 분야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올해 기준 유럽연합(EU) 회원국 소비세는 평균 20%에 달한다. EU 지역 소비자가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구매할 경우 EU에서 부과하는 자동차 관세 10%에 소비세 20%를 합쳐 최소 30%의 세금을 부담한다.

반면 미국은 소비세처럼 연방정부 차원에서 부과하는 세금은 별도로 없다. 대신 각 주에 따라 소비세와 유사한 매출세(Sales tax)를 결정해 부과한다. 각 주별로 기준이 다르지만 연초 기준 루이지애나주가 10%로 소비세가 가장 높다. 루이지애나 현지에서 유럽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 2.5%에 매출세 10%를 합쳐 12.5% 세금이 붙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량을 구매할 때 판매가격 대비 약 10%의 세금이 추가로 붙는다. 먼저 자동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로 5%의 세율이 적용된다. 그리고 개별소비세의 30%가 교육세로 적용되고, 차량 공급가액에 개별소비세액과 교육세액을 더한 액수의 10%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공급가격 기준 3000만원의 차량을 구매할 경우 신차 가격은 세금을 더해 약 3319만원이 되는 것이다.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경우 소비재가 시장에 유통될 때 부과되는 평균 세금은 약 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이를 두고 “관세장벽과 같은 수준으로 5%포인트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EU 등은 20% 안팎의 부가가치세를 매기고 있어 상호관세가 시행될 경우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좀 더 유리한 조건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매출세 등을 통해 한국산 완성차에도 국내 부가가치세와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면 포드 등 현지 업체와의 경쟁에서는 다시금 비교열위에 놓일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현지 차량 판매가가 5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5%대의 추가 세금 부과를 통해 250만원의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다만 트럼프 정부가 실제 비관세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헤럴드경제와 통화해서 “각 국가별로 국산차, 수입차 예외가 없이 세금이 부과되고 각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때도 이미 써먹었던 방식이고, 미국도 판매세를 부과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GM의 경우 한국에서 생산한 차량의 90%를 미국에 수출하는 데 (세금 부과시) 양면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트럼프식 정책은 관세 정책을 지르고 추후 협상에서 우위를 가지려는 것이 원칙이라 결국 우리도 협상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 규제까지 발목 잡힐 가능성도…“3월 미국 NTE 보고서 주목해야”=차량에 대한 환경규제 역시 세금 협상에서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지목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해 작성한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한국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배출가스 관련 부품(ERC)에 대한 변경사항을 보고하는 기준이 불명확해 미국 자동차의 한국시장 진출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환경부의 차량 검증 인증과 관련해서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시행하는 무작위 차량 검증 시험 절차와 관련 USTR 측은 “무작위 검증으로 인해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신제품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한국에서 자동차 규제 위반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점도 거론하며 형사법 개정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교역과 관세’에 대한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상무부와 USTR 측에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조사해 그에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계획을 짜라”고 지시한 바 있다.

상무부와 USTR은 4월 1일까지 각국의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장벽, 정부조달·지식재산권·서비스 무역 장벽 등을 분석한 뒤 무역 파트너국가들과 1대 1 맞춤형 상호관세 부과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한편 USTR은 매년 3월 발간하는 NTE에 각국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NTE는 미국 기업의 요구사항을 받아 작성한 뒤, 무역정책 수립 및 협상 전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사실상 수입 1위국’ 한국 완성차 집중 공격…“협상 통해 정책 불확실성 줄여야”=트럼프 정부가 30%대의 세금이 붙는 EU산 자동차를 제쳐두고 10%대의 한국 자동차를 집중 타격하는 이유는 국내 업계가 사실상 대미 자동차 수출 1위에 올라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자동차 802만대 중 한국산은 154만대로 전체 국가 중 2위에 올라 있다.

멕시코가 296만대 수준으로 1위지만, 실제로는 자체 브랜드 없이 미국 주요 자동차 기업인 GM·포드·스텔란티스와 일본 메이커의 현지 생산 기지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이 가장 상위에 올라있는 셈이다.

KB증권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10% 관세를 매길 경우 미국 현지 생산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은 각각 1조9000억원, 2조4000억원 등 총 4조3000억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해 왔던 25%의 관세가 현실화 할 경우에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미국 수출 실적은 101만3931대이며,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수출한 217만7788대의 차량 중 46.6%는 미국으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현대차·기아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50만대), 현대차 앨라배마공장(33만대), 기아 조지아공장(35만대) 등으로 현지생산량을 118만대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지난해 기준 170만대에 달했던 현지 판매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는 없다.

GM이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부평·창원 공장도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GM한국사업장의 지난해 국내공장 생산량 49만4072대 중 84.8%(41만8782대)는 미국으로 향했다. 주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가 중심에 섰다. 차량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이들 제품군의 마진율을 고려했을 때, 추가적인 과세는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수출되는 차량이 줄어들수록 공장이 위치한 지역 경제에 미칠 타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완성차뿐만 아니라 차량 부품업 등 유관산업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피해는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호관세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다른 경쟁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호관세란 상대국의 수준에 맞춰서 관세율을 정하는 조치다. 미국과 차량 부문에서 무관세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추가적인 관세 협상에 대한 여지는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4월부터 자동차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명시한 만큼 부가세와 환경규제 등의 부분에 대한 협상을 명분으로 우리나라의 대미수출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오토모티브뉴스가 집계한 현지 완성차 업체들의 수입차 비중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80%, 메르세데스-벤츠는 63%, BMW는 52%, 스텔란티스는 45%에 달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발 생산물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완성차 업계가 합심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협상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현재까지 봤을 때 우리 완성차업계가 받을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앞으로 문제는 정책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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