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농업기술 혁신이 필요한 이유


19세기 후반까지 15억 명 남짓이던 세계 인구가 최근 80억 명을 넘어섰다. 짧은 기간 이처럼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어난 데는 의학의 발달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식량 생산의 증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농기계, 화학비료와 농약, 우수한 품종과 재배 기술을 통한 농업 혁신이 수요량을 충족하고도 남는 생산성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적 배분 불균형은 기아 문제를 낳기도 했지만, 식량 생산은 인구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기간의 교역 불안과 이후의 국제 분쟁은 식량안보 이슈를 촉발했다. 최근 시작한 미국발 보호무역 전쟁도 국제 곡물 공급망의 교란 요인이 될 조짐을 보인다. 무엇보다 기존의 기상 기록을 갈아치우며 비가역적으로 진행 중인 기후변화는 농업 생산 활동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적응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변화 속도와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패턴의 변화는 환경 의존성이 큰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요인들로 인해 식량안보는 이제 국가를 막론하고 핵심 의제가 되었다. 특히, 식량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국가 존립과 식량안보가 직결돼 있음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싱가포르가 관련 부처를 통합해 식량안보청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아프리카와 동유럽지역의 농지 구매와 농업프로젝트에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고, 자국 내 식량 비축을 확대하거나 식량 수출국과의 무역협정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쌀 수출국이던 베트남, 인도, 태국은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쌀 수출을 제한 또는 금지하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농업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70년대 녹색혁명으로 주곡인 쌀의 자급을 이루었고, 백색혁명으로 연중 신선 채소를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이후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 중심의 산업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전체 산업에서 농업의 비중도 크게 감소했고, 농경지 면적은 1970년대 이후 30% 이상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의 총생산량과 생산 기반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제조업 중심의 근대화가 주곡 자급에 기반했다는 국가적 인식으로 농경지의 국가 관리와 연구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과거 농업 부국으로 꼽히던 필리핀이나 아프리카와 크게 대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상황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난화가 세계 평균보다 2배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상기상 또한 상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주변 분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공급망 불안도 해소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 중인 인구 고령화와 농촌인구 감소는 당장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만약을 대비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장의 식량안보를 위해서라도 농업기술의 혁신을 늦춰서는 안 될 때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을 둘러싼 환경 악화는 중대한 도전이기에 앞서 혁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유한 첨단 제조 기술은 농업 혁신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며,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들은 정밀 스마트 농업과 노동력 절감을 위한 로봇과 자율주행 농기계 개발에 핵심 기술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종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농업 생산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디지털 육종과 유전자 교정 기술 역시 과감한 투자와 규제 혁신을 서둘러야 할 때다.

서효원 농촌진흥청 차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