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더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정책 기능 쪼개기로 혼란 심화”
국가 협상력·원전 경쟁력 저하 우려
![]() |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하면서 원자력 업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정책의 통합 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원전 건설·운영 기능은 신설 부처가 담당하고, 수출 기능은 산업부가 맡는 구조가 마련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규제 중심 부처가 원전 정책을 주도하면 건설·운영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당장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제11차 전력수급계획(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자력발전 건설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원전산업 경쟁력과 생태계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韓만 환경중심으로 재편…“글로벌 흐름 역행”=한국원자력학회는 9일 성명을 내고 “원전 생태계를 붕괴시킬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학회는 성명에서 “기존에도 원자력 업무가 과기정통부와 산업부로 이원화돼 비효율이 지적돼왔다”며 “이번 개편은 연구개발(R&D)·건설·수출을 세 부처로 삼분화해 혼란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회는 부처 간 칸막이가 강화되면 국제 협상에서도 국가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장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원전 관련 기관과 기업들이 세 부처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각국이 에너지 정책을 환경이 아닌 산업과 통합하는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만 환경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하는 것은 국제 수주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가뜩이나 수출 여건도 녹록지 않다. 앞서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이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합의로 마무리하면서 한국형 원전 노형의 단독 미국 수출 길이 사실상 막힌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기술 자립에도 불구하고 독자 수출이 제한된 상황인데, 이번 정부 조직개편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한숨이 깊어졌다는 분위기다.
▶정책 기능 쪼개기…“국제경쟁 자충수”=무엇보다 수출이란 국내 건설·운영 경험과 긴밀히 연계돼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를 분리하는 것은 국제 경쟁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발주처들이 기술력뿐 아니라 운영 실적과 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책 기능을 쪼개는 것은 오히려 국제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현재 한국의 원전 수출 사업을 이끄는 ‘팀코리아’는 한수원이 발주처와 계약을 맺고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으며, 시공과 설비 공급에는 두산에너빌리티, 현대건설, 삼성물산, 한전KPS 등이 참여한다. 해외 발주처가 한국형 원전을 신뢰하는 것은 이 같은 팀 체제 덕분이라는 점에서, 기능 분리는 곧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혼선 우려가 커지며 노동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조는 이날 대통령실과 국회 앞에서 시위에 나서 “에너지 정책을 환경부로 넘기는 것은 국가 경쟁력 약화와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산업부 내 원전 조직 존치 방안 혹은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통해 원전 조직·기능을 한 부처에 두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민간 기업 역시 한숨을 내쉬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등 관련 기업들은 탈원전 정책 시기 긴 침체를 겪은 뒤 친원전 전환 기대감 속에서 회복세를 보여왔는데, 이번 개편은 정책적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수출에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탈원전 당시처럼 직접적인 타격은 아닐지라도, 유기적으로 맞물린 구조가 분리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제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원전들도 재논의를 거쳐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업계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김 장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저를 탈원전주의자로 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탈원전 시즌2로 보지 말아달라”며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활용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고, 석탄·석유·액화천연가스(LNG)를 전력원에서 조기 퇴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은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