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몸 전 재산 앗아간 전세 사기…바지 집주인은 겨우 200만원에 영혼을 팔았다 [세상&]

‘바지매수인’ 수법으로 전세 사기 감시 피해
서울·경기·인천서 306채 사기…700억원 규모


엘리베이터 내부에 전세 사기 피해 아파트라는 것을 알리는 배너가 붙어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집 넘어갈 줄 알았어요”

2021년. 30대 김모 씨가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자 집주인이 했던 말이다. 집주인은 무책임한 말을 내뱉었다. 당시 둘째를 막 임신했던 김씨는 휴대전화 너머의 말을 듣자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둘째를 낳기 위해 서울 안에 간신히 마련한 전셋집이 물거품이 되던 순간이었다. 김씨와 남편은 2018년 결혼한 뒤 아주 작은 집에서 첫째를 낳고 복닥복닥 살았다.

김씨와 남편은 조그만 집에서 악착같이 모았다. 모은 돈에 부모님의 지원까지 합쳐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다. 당시 남편 직장이었던 영등포구 전셋집은 수중에 있는 돈으로 구하기 어려웠다.

부부는 금천구까지 내려가 마음에 쏙 드는 신축 빌라를 구했다. 당시 전세보증금은 3억 6500만원. 김씨 부부는 은행 대출 2억원을 끼고 전셋집을 마련했다. 방 3칸이 딸린 17평 집이었다. 남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이 안정되자 둘째도 찾아왔다.

[챗GPT를 활용해 제작]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5월께 전세 사기의 시한폭탄이 터졌다. 집에 ‘공매통지서’ 1통이 왔다. 김씨 부부의 집이 공매에 부쳐진다는 의미였다. 놀란 김씨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자 들었던 말은 충격적이었다.

집주인은 “내가 밀린 세금이 많아 공매가 들어올 건 다 알고 있었다”며 “사실 나는 그 집에 명의만 빌려줬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했다.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받은 건 고작 200만원이라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주인은 세금이 16억원이나 체납된 ‘바지매수인’이었다.

바지매수인은 전세사기 일당이 계획적으로 전세 사기를 준비할 때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명의를 빌려주는 사람이다. 서류상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허수아비다.

전세 사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만삭의 몸으로 동분서주했다. 빚을 내 변호사비를 대며 소송까지 했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 가족은 남편의 사택에서 지내고 있다.

이처럼 바지매수인을 내세워 서울·경기·인천 등에서 조직적으로 전세 사기를 계획해 온 일당이 최근 붙잡혔다.

‘바지매수인’ 수법으로 수도권서 306채 사기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2020년 5월부터 2022년 10월 서울·경기·인천 등 바지매수인을 이용한 ‘동시진행 수법’으로 빌라 306채, 보증금 693억원을 편취한 일당 71명을 검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검거된 일당은 ▷컨설팅업자 3명 ▷매수인 브로커 2명 ▷총괄 모집책 1명 ▷매수인 모집책 4명 등 상선도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사기죄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포청사 전경. 이영기 기자.


이들의 수법은 ‘무자본 동시진행 수법’이다. 무자본으로 시작해 부동산 매수 후 매수가 그대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해당 부동산은 말 그대로 ‘깡통’이 되는 구조다. 통상 1명이 다수의 빌라를 매수·임대하기 떄문에 금방 들통나기 쉽다.

이번 검거된 일당은 더 악질적인 방법을 이용했다. 바로 ‘바지매수인’이다. 바지매수인 1명당 빌라 1~2채만 매수하도록 해 조직적 범행이라는 것을 감추는 수법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악성임대인 명단, 국토교통부의 악성임대인 수사 의뢰 대상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바지매수인들은 고작 30~100만원을 대가로 수억 원의 전세 사기를 위한 발판이 돼줬다. 이 과정에서 바지매수인 총괄 모집책 A와 매수인 브로커 B·C는 컨설팅업자들로부터 1건당 200~1500만원을 받아 총 18억원 상당의 불법 수익을 올렸다.

경찰은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일당은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사기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관련 첩보 입수 후 약 540개의 계좌 거래내역 등을 추적해 수사를 벌였다. 수사를 통해 바지매수인 총괄모집책, 매수인 브로커, 컨설팅업자 등 점조직처럼 흩어진 관련자들을 특정해 검거했다.

금융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주택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교란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 삶의 기반을 흔드는 전세 사기 범행을 엄중 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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