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권력층 연루 부패수사 확대…수사 젤렌스키로 향하나

‘칼끝’ 젤렌스키 가까이 다가와…아직 수사에 이름은 안올라
에너지난 등 전쟁 고난 버텨온 국민 공분…“대통령 리더십 위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스페인 의회에 도착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측근이 연루된 수사가 점차 젤렌스키를 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은 원자력공사 에네르고아톰을 둘러싼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비리 주동자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코미디언 시절 동업자 티무르 민디치를 지목했다.

1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부패 수사에서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비리 혐의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떤 사건보다도 우크라이나 권력 상층부에 접근했으며 대통령 본인에게도 가까이 다가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 시절 설립한 미디어 제작사 크바르탈95의 공동 소유주인 민디치는 에네르고아톰을 통해 1억달러(약 1464억원)를 빼돌린 ‘범죄조직’의 수장으로 지목됐다. 수사 당국은 민디치 등이 에네르고아톰과 결탁해 계약 업체들로부터 정부 계약 금액의 10∼15%를 리베이트로 요구했으며 이를 거부한 업체는 계약을 취소당할 위험이 있었다고 파악했다.

스비틀라나 흐린추크 에너지부 장관과 직전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헤르만 갈루셴코 법무장관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섰다. 비리에 연루된 두 장관의 해임을 지시하고 민디치에게 제재를 부과하는 한편 국영기업 감사를 시작하고 에너지부 조직 개편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빈번한 에너지 시설 공격으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가정에선 에너지 시설 공격에 따른 정전 여파로 난방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NABU 조사에 따르면 올가을 에너지 시설 보호 공사 계약은 에네그로아톰의 한 관리가 더 큰 뇌물을 요구해 지연됐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이 4년째 이어지는 동안 군부대의 드론 및 차량 구매에 자발적으로 기부해왔다. 하지만 서민들이 희생하는 동안 정작 지도자들은 배를 불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다.

민디치가 압수수색 직전 도피한 사실도 공분을 샀다. 민디치는 지난 10일 수사관들이 그의 자택에 들이닥치기 직전 폴란드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도피했다.

압수수색 작전을 수행한 세멘 크리보노스 NABU 국장은 “그가 누군가에게 (도피하라고) 경고받았는지도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대선 출마 당시 부패 척결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취임 초반 시민들에게 부패 행위를 NABU에 신고해달라라고 당부하는 홍보 영상에 직접 출연했고, 고위급 인사들의 사건을 처리할 별도 법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젤렌스키의 반부패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2020년 대통령실 부실장에 대한 NABU 수사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에게 이관됐는데,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 측근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사건은 이후 종결됐다.

또 올해 에네르고아톰 부패 수사가 진전되자 NABU 관계자들은 수사를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WSJ은 “이번 비리는 전쟁을 견뎌온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분노시키며 2022년 초 러시아의 키이우 점령 시도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을 가장 강력하게 위협하는 사건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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