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본말전도…정부 어떻게 믿나”
전력·인력·용수 부족 3중고 우려
“韓투자 리스크 키우는 결과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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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역 이전을 주장하면서 반도체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총 600조원이 투입되는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의 전경. 총 4개의 팹 가운데 선발주자인 1기 팹의 골조 공사가 한창 진행되면서 ‘K-반도체’ 게임체인저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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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이 불쑥 튀어나오면서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옮겨야 되는 것 아니냐”며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 가능성을 암시하면서다. 업계에서는 전력 뿐 아니라 전력·용수·인재 세 박자가 맞아야 클러스터 조성의 의미가 있다며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용인시 일대에 수백조원의 규모를 들여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첨단전략 사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고, 혁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용인시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원삼면에 약 600조원 규모의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6년 만인 올해 2월 첫 삽을 떴다. 약 126만평(415만5996㎡)에 세계 최초 3복층팹 4기 등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 약 235만평(777만3656㎡) 부지에 약 380조원을 들여 남사읍·이동읍에 팹 6기를 짓는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나섰다. 29일 용인시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9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22일 토지 및 지장물(건물·공작물·수목 등) 소유주를 대상으로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착수한지 5일 만에 보상률은 14.4%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자기 언급된 지방 이전 가능성…기업은 난감=팹 건설만 남은 시점에서 반도체 업계를 당혹케한 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이다. 김 장관은 지난 2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인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두 기업이 사용할 전기량이 원전 15기 수준인 15GW에 달한다”며 “지금이라도 전력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전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며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언급했다.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인사들의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출마를 선언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은 거스를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이라며 “송전탑을 지을 수 없는 현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라는 무역장벽, 균형 발전이라는 시대정신이 모두 새만금을 가리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지방 이전론에 업계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발표됐고, 삼성전자의 경우 전 정부인 2023년 계획을 수립하는 등 수년에 걸쳐 검토와 조율을 거친 국가 과제다. 전례 없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선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관건인 상황에서, 정책 방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 자체가 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논란이 커지자 기후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김성환 장관의) 발언의 취지는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 등 전력과 용수를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의 고민을 설명한 것”이라며 “발언의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고 진화에 나섰다.
▶“정부-기업 간 신뢰 훼손…한국 투자 리스크 키울 수도”=업계에서는 수도권 송전망 구축이 어렵다는 이유로 반도체 산단 이전을 거론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가 클러스터는 전력만 충분하다고 성공하는 사업이 아니다”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대규모 용수, 그리고 숙련된 인재가 동시에 갖춰져야 하며 이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니냐”고 토로했다.
만약 기존 계획을 뒤집어 지방 이전을 추진할 경우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도체 생태계가 흔들리고 인재 확보도 어려워져 효율성과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용인 일대에는 ASML,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등 주요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모여 있어 골든 타임 안에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순간적인 정전에도 수천억원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전력 안정성도 중요하다. 신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있는 반면, 수도권 전력 계통은 사고 발생 시 즉각적인 우회 공급이 가능해 전력 품질 유지에 유리하다. 아울러 용인 클러스터는 팔당댐과 남한강 등 한강 수계를 배후에 두고 있어 일일 수십만톤 규모의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도 갖췄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 간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발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정부가 수년간 추진해온 계획을 정부 스스로 뒤집을 수 있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 신뢰를 다시 따져볼 수밖에 없고, 이는 한국에 대한 투자 리스크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