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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 토마 피케티(사진) 파리경제대 교수는 “장기 성장을 추구하는 국가는 성장·형평성·지속가능성을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케티 교수는 새해를 맞아 본지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경제 성장 둔화·불평등 고착이라는 문제에 봉착한 한국과 같은 국가가 염두에 둬야 할 핵심 지침을 묻는 질문에 “지속적인 번영의 경로는 경제적 역량이나 기술 수준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금과 교육, 노동 규칙 같은 집단적 정치적 선택과 민주적 제도의 작동 방식이 장기 성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8면
피케티 교수는 2013년 펴낸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웃돌면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확대된다는 ‘r>g’ 명제를 제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는 자산을 가진 사람의 부가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는 이후 세계불평등연구소(WIL) 설립을 주도하며 각국의 소득·자산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왔다.
최근 공개된 세계불평등보고서 2026년판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자산 상위 10%가 전체 부(富)의 75%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은 2%에 불과하다. 성장이 이뤄지더라도 그 과실을 대다수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의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 보고서 서문에서 해당 수치를 두고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피케티 교수는 세금·복지·노동 제도를 21세기 조건에 맞게 바꾸는 사회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높은 불평등이 오히려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최상위 부유층이 정치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민주주의가 재분배적 변화를 실현할 역량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사실상 국가 주도 성장 전략을 추진하는 데 대해 “최첨단 분야에서 혁신을 가속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지에 대한 설계가 빠진다면, 성장 우선 전략은 체계적으로 높고 지속적인 불평등을 만들어낸다고 그는 경고했다.
이재명 정부가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첨단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가운데, 성장의 과실이 일반 국민에게 더 폭넓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 설계 단계부터 분배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읽힌다.
피케티 교수는 “핵심 질문은 국가가 첨단 기술을 지원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분배구조 아래에서 이를 지원할 것인가”라며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성장 전략은 장기 발전이 의존하는 사회적·민주적 토대를 잠식한다”고 했다.
그는 AI가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AI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임금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AI가 광범위한 번영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피케티 교수는 “보다 근본적으로 혁신과 재분배가 긴장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성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