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함정’ 경고한 이재용…위기의식 환기로 재도약 고삐

신년 임원 세미나서 “자만하지 말라” 주문
올해 역대 최대 실적 앞두고 위기의식 강조
메모리 시황서 비롯…본연 실력 키우자 풀이
‘사즉생’ 메시지의 연장선상 해석



[헤럴드경제=김현일·박지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반도체 부문의 전례 없는 호황으로 역대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임원들에게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고 주문했다.

2024년부터 ‘삼성 위기론’의 중심에 있던 반도체 사업이 최근 악재를 털고 터널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이 회장은 이번 메시지에서 재차 위기의식을 환기하며 더욱 고삐를 조이는 모습이다.

여전히 글로벌 무역환경이 녹록지 않은 데다 최근 반도체 사업의 반등이 메모리 시황에서 비롯된 만큼 근원적 기술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회장의 이번 주문은 올해 완전한 재도약을 다짐하는 성격의 신년 경영 메시지이자 지난해 2월 내놓은 ‘사즉생(死則生·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메시지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선대회장 ‘샌드위치론’도 소환=26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주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회장은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영상 속 성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지금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하며 올해 경영환경에 대해 여전히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영상은 지난 2007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단 회의에서 언급한 ‘샌드위치론’도 소환했다. 당시 이 선대회장은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가는 일본 사이에 놓인 우리나라를 샌드위치 신세로 평가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이 선대회장의 표현을 빌려 현재 미·중 무역갈등과 중·일 경쟁구도 사이에서 여전히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대외 경영환경에 대해 경각심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달라진 건 경쟁구도가 바뀌었고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는 ‘위기를 넘어 재도약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진 크리스털 패가 전달됐다. 반도체 부문의 호실적 전망에서 비롯된 최근의 낙관론을 경계하고 위기의식에 기반해 본연의 실력을 키우자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메모리 가격상승 따른 ‘실적 착시’ 경계=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2024년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엔비디아 납품 지연과 파운드리의 대규모 적자 등으로 인해 고전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D램 설계 변경이라는 초강수로 HBM3E(5세대 HBM)의 기술 결함을 극복하며 10월 3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엔비디아 납품을 공식화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큰손’인 엔비디아의 벽을 넘으면서 3분기 반도체 부문은 역대 최대 매출(33조100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7조원을 기록하며 턴어라운드의 신호탄을 쐈다. 4분기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 수준인 약 16조원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의 연간 영업이익이 162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종전 최대 연간 영업이익은 반도체 호황기였던 2018년의 44조5700억원이다. 8년 만에 이보다 3배 넘게 불어난 신기록 달성이 예상된다.

범용 D램은 물론 낸드에서도 고성능 제품을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며 가격 상승이 확인되고 있어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실적 회복이 이 같은 메모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만큼 과대평가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외부에서 나온다. 장기적인 성장을 이어가려면 본연의 실력을 찾는 것이 올해 주요 미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JP모건 “삼성, 올해 엔비디아向 HBM4 점유율 30~35% 차지”=반도체 업계는 올해 메모리 시장의 승부처인 6세대 HBM4에 주목하고 있다. 범용 D램보다 수익성이 5~6배 높은 HBM은 공급 부족이 지속되고 있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올해 주요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JP모건은 그간 SK하이닉스가 독주하던 HBM 시장에서 올해 삼성전자의 매출 성장률이 메모리 3사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세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57%, 삼성전자가 22%, 마이크론이 21%로 집계됐다.

그러나 JP모건은 엔비디아향 HBM4 공급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30~35%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HBM4를 포함한 전체 엔비디아 공급망 내에선 10% 후반대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삼성전자의 6세대 제품인 HBM4 12단의 경우 엔비디아의 요구 수준(1초당 10Gb)을 크게 뛰어넘는 11.7Gbps의 동작속도를 구현해 엔비디아 공급망에 가장 가까이 근접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HBM4는 올해 하반기부터 양산될 엔비디아의 신형 AI 가속기 ‘루빈’에 탑재될 예정이어서 삼성전자 반도체의 실적은 하반기로 갈수록 더욱 강세를 띨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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