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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 차기 의장으로 지명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로이터]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케빈 워시가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55) 전 연준 이사를 지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케빈 워시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함을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케빈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며 그가 위대한 연준 의장 중 한 명, 아마 최고의 연준 의장이 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며 “무엇보다 그는 ‘적임자’이며, 여러분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게시물에서 워시 전 이사의 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했다.워시 전 이사는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임원 등을 지냈으며 2006년 당시 역대 최연소 연준 이사(2006∼2011년)로 연준에 합류했다. 2019년 10월부터는 쿠팡의 미국 모회사인 쿠팡 아이엔씨(Inc.) 이사회 사외이사로도 활동해왔다.
워시 전 이사는 연준 내부 경험을 갖춘 인사이자, 동시에 트럼프의 통화정책 기조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백악관에서 워시 전 이사와 직접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워시 전 이사가 향후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얼마나 분명히 지지하는지를 집중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그(워시)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화한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금리 인하 의지가 워시 전 이사의 인식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관례를 깨고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을 향해 대폭적인 금리 인하를 촉구해 왔다. 파월 의장이 따르지 않자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사임을 압박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끝난다. 워시 연준 의장 지명자는 연방 상원의 인준 표결을 통과해야 취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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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 워시 걸어온길 |
1970년 뉴욕에서 태어난 워시는 미국식 엘리트 코스의 전형을 밟아온 인물이다. 유대계 가정에서 자라 스탠퍼드대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한 뒤 하버드 로스쿨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차례로 졸업했다. 법과 정책, 금융을 두루 아우르는 학력은 이후 그가 “시장과 제도, 정치 언어를 동시에 이해하는 인물”로 평가받는 배경이 됐다.
그의 첫 무대는 월가였다. 1995년 모건스탠리에 입사해 인수합병(M&A) 부서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불과 7년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부사장(VP)과 총괄임원까지 오르며 대형 인수합병과 자본시장 거래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함께 일했던 인사들은 워시를 “금리나 정책보다 숫자와 구조에 강한 금융인”으로 기억한다.
이 시기 경험은 워시의 통화정책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통화정책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기업 가치와 레버리지,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를 즉각적으로 흔드는 변수라는 인식이다.
2002년 케빈 워시는 월가를 떠나 공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정책실 특별보좌관을 맡은 데 이어,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수석보좌관으로 활동하며 경제정책 조율을 담당했다.
이 시기 워시는 행정부 내부에서 정책 결정 과정과 정치적 조율 구조를 직접 경험했다.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에 합류한 뒤에는 시장과 행정부를 아우를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워시는 연준의 독립성을 강조해 왔지만, 정책 당국이 정치적 환경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는 점도 공개적으로 언급해 온 인물이다. 이러한 이력은 그가 연준 재직 시절 행정부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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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 차기 의장으로 지명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블룸버그통신] |
2006년 2월, 부시 대통령은 케빈 워시를 연준 이사로 지명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지나치게 젊다는 반대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사상 최연소 연준 이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휩싸인다.
2008년 금융위기 국면에서 워시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의 핵심 참모로 활동하며 위기 대응 실무의 한복판에 섰다. 연준은 금리 결정 기관을 넘어 자금시장과 금융 시스템 전체를 지탱해야 하는 역할을 떠안았고, 워시는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의 ‘배관(plumbing)’을 다루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공로로 워시는 2009년 포춘지가 선정한 ‘40세 이하 가장 영향력 있는 40인’에 이름을 올렸다.
연준 내부에서는 그를 “시장과 정책당국을 동시에 이해하는 실무형 인사”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았다. 위기 대응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개입이 시장 심리와 실물경제에 어떤 속도로 전이되는지를 직접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력은 훗날 그가 연준의 대차대조표 확대와 비전통적 정책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 배경이 된다.
당시 로이터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연준의 위기 대응에 대해 “중앙은행은 위기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가는 것이 정당한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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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케빈 워시(왼쪽 두번째) 전 연준 이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세마포 세계 경제 서밋에 참석한 모습. [게티이미지] |
워시는 2011년 돌연 연준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임기가 7년이나 남은 시점이었다. 구체적인 사퇴 사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연준의 초저금리·양적완화(QE) 기조를 둘러싼 버냉키 의장과의 시각 차이가 작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연준을 떠난 뒤 그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활동하며 통화정책과 금융규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키웠다. 그는 2011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의 신뢰는 숫자뿐 아니라 제도와 절차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며 정책 결정 과정의 ‘구조’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특히 위기 이후 비정상적으로 커진 연준의 대차대조표가 자산 가격 과열과 도덕적 해이를 키웠다는 문제의식은 워시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굳어졌다. 연준 내부를 경험한 인물이 연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공화당 진영과 월가에서 동시에 주목받았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 워시는 제롬 파월과 함께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공화당 진영 일각에서는 “워시가 더 매파적이고 규율 중심의 중앙은행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트럼프의 선택은 파월이었다. 이후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 결정을 후회하는 발언을 거듭했고, 연준과의 갈등은 트럼프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트럼프는 2020년 1월 미·중 1단계 무역 협정이 열린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초청 손님 자격으로 앉아 있던 워시를 보며 “나는 당신과 함께 일했으면 매우 만족했을 것”이라면서 “왜 그 자리를 원했을 때 좀 더 강하게 나가지 않았느냐”며 대본에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트럼프 2기 내각이 꾸려질 때 스콧 배선트 현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재무장관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이자 차선책으로 워시가 거론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워시는 ‘선택받지 못한 카드’이자 ‘대안적 연준 의장’이라는 평판이 따라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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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7월 세계 거물급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케빈 워시 연준 이시(당시·오른쪽)와 김범석(가운데) 쿠팡 창업자 겸 CEO,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 드러켄밀러가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 |
연준을 떠난 이후에도 워시는 정책 현장에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았다. 학계와 싱크탱크에서 활동하는 한편, 금융회사 고위직을 맡으며 시장과의 접점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중앙은행 출신이면서도 ‘시장형 인물’로 남아 있으려는 행보였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워시는 2019년 쿠팡 이사회 멤버로 합류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쿠팡이 글로벌 경영과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전직 연준 이사이자 백악관과 월가를 모두 경험한 워시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이다. 워시는 현재까지 쿠팡 이사회 금융·거버넌스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쿠팡의 금융과 경제정책 전문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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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2월 17일 수요일, 워싱턴 백악관 외교 접견실(Diplomatic Reception Room)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AP] |
워시는 보호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후버연구소 기고문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보호주의의 물결에 저항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완전히 궤를 같이하는 인물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트럼프 진영이 워시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워시는 트럼프가 원하는 ‘낮은 금리’와 연준이 지켜야 할 ‘지표와 규율’ 사이를 조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연준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경험했고, 동시에 정치의 문법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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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전 이사 케빈 워시가 2025년 5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통화정책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
케빈 워시 전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지명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매파 성향’으로 분류돼 온 워시가 실제로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느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워시 후보자가 금리 인하 자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인하의 속도와 방식,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정책 서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워시는 연준 내부와 월가에서 대표적인 매파 성향 인사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그의 매파 이미지는 금리 수준 자체보다는, 위기 이후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와 양적완화(QE), 대차대조표 확대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많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자산 가격 왜곡과 도덕적 해이를 키웠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워시는 금리를 안 내릴 사람”이라는 평가보다는 “금리를 내리더라도 명확한 지표와 질서를 중시하는 인물”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시가 연준 의장 상원 인준을 받게 되면 금리 인하 자체보다는, 물가·고용 등 지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설명과 연준의 제도적 신뢰를 유지하는 데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속도는 트럼프의 기대보다 느릴 수 있지만, 일단 방향이 설정되면 근거를 바탕으로 점진적 인하가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금리보다 대차대조표 축소(QT)와 유동성 관리가 동시에 주목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편 워시는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의 상속자 로널드 로더의 사위이기도 하다. 로널드 로더는 트럼프 대통령과 약 60년간 알고 지낸 친구이자, 든든한 정치 자금 후원자로 꼽힌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8년 말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그린란드 매입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이 과정에서 로널드 로더의 조언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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