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서 ‘백제 피리’ 발견…삼국시대 최초 관악기·최대 목간 출토

국립부여문화유산硏 발굴 성과 공개
7세기 가로 피리·목간 329점 춡토


부여 관북리 관악기 유물 출토 모습. [국가유산청]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백제시대에 사용됐던 피리가 발견되는 등 최초로 삼국시대 관악기가 발견됐다. 또 국내 최대 수량의 목간도 함께 출토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부여군과 함께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2024~2025년) 성과 공개회를 개최했다.

부소산 남쪽에 위치한 부여 관북리 유적은 사비기 왕궁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난 1982년부터 발굴조사를 해 왔다.

16차 발굴조사에서는 횡적(가로 피리) 1점과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을 포함한 329점의 목간이 출토됐다.

백제 조당 건물로 파악되는 7세기 건물지 인근의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에서 출토된 횡적은 대나무 소재로 5개의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다.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잔존 길이는 224mm다.

횡적이 발견된 구덩이 내부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된 것으로 보아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은 백제 횡적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한 사례이자, 삼국시대(7세기)를 통틀어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첫 사례다. 사비백제 왕궁의 핵심 공간에서 악기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백제 궁중음악과 악기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간지명 기록 목간(삭설). [국가유산청]


발굴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최대 수량이자 백제 사비기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로 평가된다. 사비 천도 초기 단계의 수로에서 집중 출토됐으며, 간지년이 기록돼 제작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경신년’은 540년, ‘계해년’은 543년에 해당하며, 이는 백제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다.

국가 행정 문서인 인사 기록 목간, 국가 재정과 관련된 장부 목간, 관등·관직이 적힌 목간과 삭설이 다수 출토돼 해당 공간이 백제 중앙 행정 관청인 22부사와 관련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비도성의 중앙 행정 구역인 5부와 방-군-성 지방 행정 체계 재편 과정을 보여주는 목간도 다수 출토됐다.

또한 ‘입동(立冬)’, ‘인심초(人心草)’, ‘현곡개(玄曲愷)’,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여겨온 ‘전(畑)’자 등이 적힌 목간은 백제의 선진적인 문화와 동아시아의 활발한 대외 교류를 보여준다.

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약 1500년 전 백제의 국가 운영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문서 행정 실태와 당시의 음악 문화와 소리 복원에 기여할 실물 자료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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