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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신화를 창조한 중흥그룹 정창선 회장이 최근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같이 한 시대를 풍미한 기업가의 타계는 우리사회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목표를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신일념(一身一念)의 자세와 ‘열정과 의지,’ ‘정직과 성실,’ ‘믿음과 신뢰’의 인생철학으로 정 회장은 대한민국 재계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정창선 회장의 평소 신념인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말은 그가 평생을 몸소 겪어온 불굴의 기업가 정신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의식을 나타낸 역설적인 표현이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철저하리만큼 매사에 신중하게 대했던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대한민국 경제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원동력이 되었다.
민족중흥의 용광로를 만들어낸 성공신화는 이루 다 열거하기에 부족하다. 단적인 사례는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국토공간의 균형발전의 근간인 세종시에서, 미래 삶의 공간을 선도해나가는 수도권에서, 그리고 미국과 중동 및 동남아 지역의 해외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평소 지론인 ‘창조·정직,’ ‘근면·성실,’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택문화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온 정 회장이었지만, 그는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북구 지야동)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꿈 많은 소년이었다. 더 원대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소년의 다짐이 중흥그룹의 꾸준한 성장과 신화창조의 밑거름이 됐다. 기본에 철저하게 충실하고 완벽한 선택을 바탕으로 세상의 시간이 아닌 그 만의 세상과 시간을 이끌어온 정 회장의 자성일세(自成一世)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정 회장이 남긴 발자취는 새로운 희망과 목표를 세우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열정과 믿음이라는 시대정신에 그 뿌리가 있다. 그 누구에게는 전설이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배워야할 귀감이겠지만, 정 회장이 가진 불굴의 장인정신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는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또한 정창선 회장은 대기업 그룹의 총수가 되었어도 늘 어려운 이웃과 주변의 취약계층에게 따뜻한 손길로 온정을 베푸는 마음 든든한 분이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회사 직원들과 같이 주변 식당에서 백반을 사 먹는 소탈함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소박한 근검절약의 습관과 회사 직원들과 함께하는 생활관은 정 회장이 가지고 있던 동료와 약자에 대한 마음 따뜻한 사랑과 배려의 정신이었다.
정 회장이 갖고 있던 기업가치는 독자적인 기술력과 혁신적인 품질경영, 튼튼한 재무 구조를 구비한 가운데 내실경영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기본에 충실한 가운데 매사에 완벽을 기하는 정 회장의 경영 철학과 혜안은 곧 미래 성장의 토대와 함께 글로벌 디벨로퍼로 발전해 가는 기본 축이었다.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제공해준다는 차원을 뛰어넘어 또 다른 거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정 회장의 철학에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가 선택한 대안에는 성숙된 자유민주주의,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높은 삶의 질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정 회장의 철학에는 정치적 영향력이나 유착관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정 회장은 기존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대기업들이 해왔던 관행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왔다.
정창선 회장은 ‘역경을 딛고 꿈을 위해 일어서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며 개척해 온 산증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위기 때마다 한국경제를 일으킨 것은 불굴의 기업가 정신이었다”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 대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자”고 역설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중흥그룹의 도약과 양질의 시공을 위한 원칙과 기준은 정 회장이 평소 생활 속에서 행해 왔던 치밀함, 완벽함 그리고 성실함이 바탕이었다. 그가 주창해온 불굴의 기업가 정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초안전, 초품질, 초연결’로 미래를 도전하는 데 대한 혜안을 제공해줄 것으로 믿는다.
길병옥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