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AI시대, 제지공장들의 생존법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영화속 주인공 이병헌 분은 영화 내에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전자화 된 AI 시대에 제지 산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CJE&M]


신문은 사라지고 택배 상자는 늘었다
지종 구조 재편이 업종 구도까지 바꿔
깨끗한나라·한솔제지 등 실적 희비
고용·설비는 그대로인데 수익성 흔들


[한솔제지]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제지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이병헌 분)의 이야기다.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들과 딸, 그리고 반려견까지 두마리나 키우는 이병헌은 영화속에서 “나는 다 이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맛있게 먹었던 ‘장어’는 사실 해고가 확정된 이들에게만 전달된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병헌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한다. 이병헌이 일했던 ‘제지산업’은 디지털을 넘어 AI시대에 와있는 지금 영화속 주인공처럼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 할 수밖에 없을까.

한국제지연합회가 집계한 2009년~2024년 국내 제지류 생산량 현황. 신문용지 생산량은 급격하게 줄었고, 골판지원지 생산량은 늘었다. [한국제지연합회]


한국제지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산된 종이류 가운데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많이 줄어든 종이류는 신문용지로 2009년 146만톤에서 2024년 37만톤으로 줄었다. 디지털 뉴스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제지산업계가 바로 신문용지 부문이다. 인쇄용지 타격도 심각하다. 2009년 297만톤이나 되던 인쇄용지 생산량은 2024년에는 226만톤으로 약 71만톤 가량 줄었다. 사무에 필요한 문서들 다수가 디지털화 전자화 되면서 굳이 ‘인쇄용지’가 필요치 않은 상황이 수년동안 누적된 결과다.

이에 비해 택배용 포장 박스에 사용되는 골판지원지 생산량은 2009년 369만톤에서 2024년 557만톤으로 188만톤이나 수직상승했다. 온라인 쇼핑과 택배 물류가 확장되면서 골판지원지 사업 분야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위생용지 부문 역시 성장세가 가팔랐다. 2009년 44만톤 규모던 위생용지 생산량은 2024년에는 52만톤으로 8만톤 가량이 늘었다. 국내 생산 제지류 총 생산량은 지난 2009년 1048만톤이었고, 2024년에는 1081만톤이다. 생산된 종이가 어떤 종류냐는 달라졌지만 전체 종이 생산량은 소폭이나마 늘어난 셈이다.

이 같은 지종 구조 변화는 기업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생활소비재(위생용품) 비중이 큰 깨끗한나라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5082억원(전년 대비 5.4% 감소), 영업손실 226억원으로 적자가 확대됐다. 당기순손실은 472억원으로 손실 폭이 커졌다. 과자 박스 등 소형 포장에 많이 사용되는 백판지의 시황 악화가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반면 인쇄·산업용지 비중이 큰 한솔제지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2조2900억원, 영업이익 49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27.1%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38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회사는 환율 상승과 원부재료 가격 및 해상운임 하락 등을 손익 개선 요인으로 들었다.

골판지업은 물류 수요를 타고 매출 방어는 했지만 원가·시황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대림제지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1688억원(전년 대비 1.5% 증가)에도 영업이익 52억8000만원(46.3% 감소), 당기순이익 66억원(49.9% 감소)으로 수익성이 둔화됐다. 한창제지도 2025년 기준 매출 2669억원(9.2% 감소), 영업손실 51억원으로 적자 전환했고, 당기순손실 131억원을 기록했다.

아세아제지, 신대양제지 등 골판지 중심 기업들은 물류 수요와 맞물려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골판지 업황 역시 경기 변동과 증설 경쟁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내수 물동량 둔화나 해외 공급 확대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수익성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제지산업의 핵심 변수는 ‘종이 수요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어떤 종이를 얼마나 남길 것인가’로 이동했다.

고용과 설비 측면에서도 변화는 제한적이다. 대형 제지공장은 여전히 막대한 투자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장치산업이다. 자동화가 확대됐지만 공장 자체가 사라지는 속도는 느리다. 대신 생산 품목 전환과 설비 구조 조정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쇄용지 라인을 줄이고 포장·친환경 소재 중심으로 재편하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산업의 소멸이 아니라 체질 변화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제지연합회가 집계한 종이류별 생산량 표 [한국제지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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