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게티이미지]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포르투갈, 싱가포르. 최근 전 세계 초부유층이 새로운 거점으로 선택하는 국가들이다. 지정학적 긴장과 급격한 정책 변화가 이어지면서 세계 최고 부유층 가문들의 국경 간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민간 부(富) 이동”이라고 평가한다.
CNBC는 초고액자산가들을 자문하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최근 부유층 사이에서 국경 간 이주와 거주 전략 수립, 시민권 컨설팅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순한 세금 절감 차원을 넘어, 정책 리스크에 대비한 ‘거주지 다변화’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87명의 억만장자 고객 중 36%가 작년 이미 최소 한 차례 이주했으며, 9%는 이주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특히 54세 이하 억만장자 가운데 44%는 지난해 거주지를 옮겼다. UBS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부의 이동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부유층은 정치적 안정, 개인 안전, 낮은 세율,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지역을 선호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기에 ‘관할권 리스크’라는 개념이 추가됐다. 정책과 규제가 급변할 가능성까지 감안해 거주지를 선택한다는 의미다.
![]() |
| [123RF] |
국제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 파로앤코의 디페시 아가르왈 공동창업자는 “정책 체제는 단일 정치 주기 안에서도 급격히 바뀔 수 있고, 지정학적 긴장도 예고 없이 고조될 수 있다”며 “부유층은 자산을 분산 투자하듯, 거주지와 시민권도 분산 전략의 일부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과거에는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났던 정책 변화가 이제는 몇 년 안에 현실화한다는 점도 이주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거주지 결정은 국가의 중립성, 제도적 안정성, 법치 수준 등 정성적 요소까지 종합 평가해 이뤄진다.
영국은 대표적 사례다. 200년 넘게 유지돼 온 비거주자(non-domicile) 세제 혜택이 지난해 4월 폐지되면서 부유층 사이에서 영국에 대한 재평가가 빠르게 진행됐다.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는 올해 영국에서 약 1만6500명의 백만장자가 순유출됐으며, 이들의 자산 규모는 약 92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이는 전년(9500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자본과 인재는 정책 예측 가능성과 강력한 법적 체계를 갖춘 소수 국가로 집중되고 있다. 가장 큰 수혜국은 UAE다. 개인소득세, 부유세, 자본이득세가 없고, 장기 거주를 허용하는 ‘골든비자’ 제도가 유연하게 운영되면서 글로벌 자산가들의 주요 이주 허브로 자리 잡았다.
유럽에서는 포르투갈과 그리스의 골든비자 프로그램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탈리아, 모나코, 스위스는 장기적 안정성과 세제 확실성을 중시하는 가문들의 선택지다.
싱가포르 역시 규제 안정성과 금융 인프라를 중시하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다만 최근 투자 요건이 강화되면서 진입 장벽은 높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프리미엄 거주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주의 성격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사업 기회 확대와 세제 혜택을 노린 ‘공격적 이동’이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자산 보호와 세대 간 승계, 운영 유연성 확보를 중시하는 ‘방어적 이동’이 늘고 있다.
아가르왈은 “이제 성장뿐 아니라 보호가 핵심 동인으로 자리 잡았다”며 “정치·정책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의 이동은 더 이상 일부 특수 계층의 선택이 아니다. 세계 부의 지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