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車로 불똥 튈라…‘더 센 관세’ 우려에 기업 비상 [트럼프發 관세 카오스]

정부, 민관합동 대책회의 주재
김정관 “美와 소통…환급 정보 적기에 제공”
재계, 무역확장법 232조 등 관세 변화 촉각
K-반도체·車 겨냥 품목관세 타격 ‘전전긍긍’
中 관세 15%로 인하…K-배터리 위협 요인
조선업 ‘마스가’ 차질…가전도 여전히 영향권


김정관(오른쪽 세 번째) 산업통상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판결 관련 민관합동 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1년 만에 대전환기에 접어들면서 국내 산업계는 향후 ‘더 센 관세’가 몰고 올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당장은 부담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름만 바꿔 또 다른 관세들이 줄줄이 예고돼 긴장감은 더 높아진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글로벌 관세(15%)를 필두로 무역법 301조·무역확장법 232조 카드를 잇달아 내세워 올해 우리 기업들을 또 다시 쥐고 흔들 기세다. 관세를 무기로 한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투자를 받아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전략도 한층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는 우선 미국의 후속조치 동향과 다른 나라의 움직임을 면밀히 파악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단체, 주요 업종별 협회, 유관기관 및 관계부처 등과 가진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한미 관세 합의를 통해 확보한 이익균형과 대미 수출여건이 훼손되지 않도록 미측과 긴밀히 소통하며 협의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출여건 변화 가능성에 대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수출다변화 정책을 끈기있게 추진하고, 관세환급 불확실성에 대응해 기업에 적기 정보 제공이 될 수 있도록 유관기관 및 업종 협·단체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품목관세 무기화’에 투자압박 강화 가능성=국내 수출 기업들은 주말에 이어 이날에도 일제히 수출동향 및 경영전략 점검에 나서며 분주한 모습이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기반한 상호관세 및 펜타닐 관세가 무효화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기반한 품목관세를 더 강력한 무기로 활용할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됐던 반도체는 오는 24일부터 발효되는 글로벌 관세 대상에서도 빠져 당장은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품목관세를 앞세워 압박수위를 올릴 경우 이 같은 무관세 원칙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품목관세 수준과 면제 여부 등을 놓고 미국 행정부와 줄다리기를 해왔지만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다. 우리보다 먼저 무역협상을 타결한 대만은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량에 비례해 품목관세를 면제받는 조치를 이끌어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만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등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실제 반도체 관세부과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대만 수준의 반도체 관세우대 혜택을 받아내려면 결국 미국 현지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관세 15%를 적용받고 있는 자동차 업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다만 품목관세를 다시 25%로 상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현대차는 전날 미국 관세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내부 전략회의를 열고 관세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로선 25% 인상 방침이 완전히 철회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3월 초까지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되는지를 미국 측이 지켜본 뒤 최종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무역확장법 232조에 기반한 품목관세 50%를 적용받고 있다. 다만 최근 미국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 및 일부 파생제품에 대한 관세 범위 축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일부 기대감이 형성됐다.

▶中 관세 인하, K-배터리 위협…조선업계는 ‘마스가’ 차질 우려=앞서 펜타닐 관세(10%)와 상호관세(10%)를 동시 적용받았던 중국은 이번 대법원 위법 판결로 글로벌 관세 15%를 적용받는다. 기존보다 5% 포인트 낮아지면서 일부 가격 경쟁력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중국과 경쟁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는 위협 요인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2024년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는 올해부터 각각 25%의 품목관세가 적용된다.

다만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보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에 오히려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지 생산비중이 낮은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구도에서 상대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는 이번 판결이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스가는 지난해 한미 상호관세 협정 타결에서 지렛대 역할을 했다.

마스가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중 1500억달러를 미국 조선업 재건에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조선업 재건을 위한 해양행동계획(MAP)을 발표,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시장진출은 더욱 가시화됐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법원의 판결로 양국의 마스가 논의가 늦어질 수 있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주요 국가와 관세 논의를 다시 진행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는다면 마스가 프로젝트 진행 시기는 예정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전업계는 주요 생산기지인 인도, 베트남의 상호관세율이 각각 18%, 20%에서 15%로 낮아지고, 멕시코를 겨냥한 펜타닐 관세도 무효화돼 당장 부담은 낮아졌다고 판단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그동안 멕시코에 있는 가전공장으로 관세에 일부 대응해왔다.

김현일·배문숙·정경수·한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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