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규제성 법안’ 146건 발의
‘미래 동력’ IT·금융·플랫폼 집중
대기업 압박 차등 규제 법안 다수
“불필요 규제 법 과감히 도려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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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생겨나는 규제들은 기업의 도약 의지를 꺾고, 세계 무대에서 뒤쳐지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기업들은 본 대결을 펼치기도 전에 중대재해처벌법, 상법, 노란봉투법, 이제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까지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법안들로 운신의 폭이 급속도로 좁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4·5면
36년 전 기준에서 바뀌지 않은 배임죄는 아직도 개편 시점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기업 규모에 따라 잣대를 달리하는 ‘차등 규제’까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인센티브를 받는 대신 더 엄격한 규제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특별한 제동 장치 없이 이뤄지는 과잉 입법 문화를 근절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원활한 기업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 규제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7일 국민참여입법센터의 국회입법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제안된 경제 관련 법안 중 ‘규제 신설·강화 해당 여지 있는 법안’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총 146건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 시 약 2.5일마다 1건씩 새로운 경제 관련 규제 법안이 제안된 셈이다.
▶연중 내내 발의…IT·플랫폼·금융 분야 집중=지난해 발의된 법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정보통신기술(IT), 플랫폼을 비롯해 금융 분야 등에서 규제가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국회 상임위원회별 분류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관 법안이 67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무위원회 소관 법안이 50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두 상임위의 법안이 전체 규제 발의안을 80% 이상을 차지했다. 과방위에서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 등을 통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새로운 의무 부과와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들이 쏟아졌다. 정무위 역시 지배구조 개선 등을 명목으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대거 발의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계에선 전통 제조업을 넘어 AI, 클라우드, 핀테크 등 혁신이 필수적인 분야에 규제가 집중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와의 전쟁에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우리 기업과 경쟁하는 해외 기업들이 현지에서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만 과도한 규제에 묶여 있다면 동일 선상에서의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크는게 죄인가”…성장 사다리 뺏긴 기업들=특히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 압박이 가중되는 ‘성장 패널티’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22대 국회 출범 이후 2025년 말까지 발의된 기업 관련 법안 1021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기업 규모에 따라 규제를 차등 적용하는 법안은 총 149건에 달했다. 자산 규모나 매출에 따라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 증가형’이 94건,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세제 혜택 등을 박탈하는 ‘혜택 축소형’이 55건으로 집계됐다.
현행법상 이미 343건의 차등 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불과 19개월 만에 새로운 성장 족쇄가 쏟아진 셈이다. 여기에 경제 활동과 관련된 형사 처벌 조항만 6000여개에 달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이 같이 촘촘한 규제 그물망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지주회사들은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규제에 묶여 대규모 외부 자금 조달에 한계를 겪고 있다. 또한 상법상 수십 년간 명확한 근거 없이 이어져 온 ‘자산 2조원’ 기준은 성장의 천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역시 변화한 소비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 과거형 규제의 전형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쏟아지는 법안이 결국 투자 결정을 저해하고, 관리 비용을 폭증시킨다고 보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근의 입법 흐름을 ‘입법 만능주의’에 매몰된 규제 폭주라고 규정하며 “경쟁력을 높이려면 기업들에게 원기를 불어넣어야 하는데, 도리어 족쇄만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논의되는 3차 상법 개정안과 노동자 추정제 등에 대해 우려를 강조하며 “경영권이라는 최소한의 보호막을 걷어내면 기업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규제를 합리화하는 차원을 넘어 불필요한 법안을 과감히 도려내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과잉 규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요구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이미 나온 법안들의 실효성과 명확성을 확보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은 최근 화두인 AI 기본법과 관련해 “고영향 AI의 정의처럼 규제 대상을 확정하는 핵심 개념조차 불명확해 불확실성이 있다”며 “해외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 집행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규제 기준을 구체화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고은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