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는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바다와 계곡 중 무엇이 더 무서운지 묻는다면, 계곡이다. 계곡이 더 무서운 건 ‘깊이’를 짐작할 수 없어서다.

한 두걸음씩 깊이를 재가는 해수욕장과 달리 계곡은 이 바위 뒤 얼마나 깊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겁 없이 한 발 내딛다가 정수리까지 잠겨버린 후, 계곡 물만 봐도 겁난다.

이런 예도 있다. 빙판길이 있다. 미끄러울 것이 분명하다. 그럼 오히려 안전하다. 벽을 짚고 걷거나, 엉금엉금 기거나, 아예 미끄러질 각오로 가면 된다. 가장 미끄러운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은 아니다. 미끄러움을 예상치 못했을 때가 진정 위험한 때다.

진짜 공포는 깊어서 미끄러워서 오는 게 아니다. 그 정도(程度)를 예측할 수 없는 게 진짜 공포다.

요즘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잠을 설친다고 한다. 5000선을 돌파한 지 한 달 만에 6000선까지 뚫은 ‘불장’이다. 그게 문제였다. 급등하면 왜, 언제까지 급등하는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인공지능(AI) 열풍과 반도체주 호황은 코스피 상승을 견인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증시 부양책과 풍부한 유동성도 있다. 4000선을, 5000선을, 6000선을 돌파할 때조차도 같은 이유였다. 최근 급등세는 이로는 설명 부족한 기현상이었다. 언제 어디까지 오를지 예측 불가이니 언제 얼마나 떨어질지도 당연히 예측 불가.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국판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 200 변동성 지수는 최근엔 54까지 상승, 2009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통상 50을 넘으면 ‘극단적 공포구간’으로 해석한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발발했다. 중동 전쟁도 불확실성 투성이다. 전쟁이 언제 끝나는지, 어떻게 끝나는지, 시나리오와 전망이 어지럽다. 전쟁 기간조차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년이니, 예측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이런 불확실성을 완화해 줄 유일한 인물은 미국 대통령일 것이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자체가 예측불가 리더십의 대명사다. 불확실한 리더의 불확실한 전쟁이 불확실한 증시를 더 불확실하게 만드는, 불확실성의 복리 효과다.

이럴 때일수록 투자자는 더 냉정해져야 한다. ‘더 버는 것’보다 ‘덜 잃은 것’에 주력하며 조정장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조정은 심리에서 오지 않는다. 많이 올라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떨어질 계기가 있어야 떨어진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준 격이니, 이번 중동 전쟁은 국내 증시 조정 국면 차원에선 나쁜 것만은 아니다. 떨어질 만할 때 떨어지는 건 오히려 건전하다. 공포심으로 보자면, 최근 단기 급등세가 더 무서웠다.

전쟁 양상에 따라 장기 조정에 돌입할 수도 있다. 다만, 최근 코스피 상승세를 견인한 반도체주의 펀더멘탈 매력 자체는 여전하다. 그 자체가 훼손되지 않는 한 방향성은 명확하다.

코로나 사태로 코스피가 하루에만 8% 폭락했던 게 2020년 3월이다.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도에 ‘동학개미운동’이 등장했고, 이후 코스피는 급등했다. 당시 증시 대기 자금인 예탁금은 40조원대. 지금은 100조원 이상이다. 규모로만 본다면, 동학개미운동이 아니라 ‘동학개미혁명’도 가능할 법한 규모다.

과도한 투자는 금물이지만, 과도한 불안 역시 불필요하다. 냉정하게 조정장을 대비할 시기다. 아는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김상수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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