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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왜곡죄로 골치 아픈 판검사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뉴스 제목이다. 사법부를 견제한다는 미명 아래 국회가 일방적으로 처리한 형법 개정안에 들어간 새 죄명이다. 근대 정치 교과서와 우리 헌법은 ‘삼권 분립’을 기본 원칙 중 하나로 규정했지만, 지금은 입법부가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다.
입법부 독주의 명분은 국민의 선택이다. 선출직이 아닌 대부분 임명직 공무원 신분인 사법부를 국민이 4년마다 한 번씩 직접 뽑는 입법부가 견제하는 것은 민의 수렴이라는 측면에서 마땅하다는 논리다. 소위 서열이 입법부가 더 높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와 관계자들, 그리고 국회 소수파의 우려 목소리는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18세기 대혁명 시대 프랑스 역사책에서나 봤던 ‘입법 독재’의 21세기 대한민국 버전인 셈이다.
그럼에도 입법부의 사법부 견제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면, 반대로 입법부에 대한 견제 장치도 생각해 볼 법한 문제다. 국회에 하루에도 몇십개씩 올라오는 법안에는 기업이나 개인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독소조항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나마 언론, 시민단체, 반대 정파 등을 통해 이슈로 떠오르는 것도 이들 전체 법안 숫자에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심지어 이런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주체가 책임을 진 적은 우리 역사에 거의 없었다. 다음 선거에서 표를 안 주면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간의 입법 과오에 대한 책임이 이슈화된 적은 사실상 없었다. 법안 통과율이 10%대에 머물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입법안이 우후죽순 발의되는 이유기도 하다.
오히려 선거철이 되면 없던 문제법안이 더 발의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쟁점의 이슈화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특정 이익집단의 지지를 얻어내며, 나아가 정치적 대립 거리를 만들어 내 집토끼를 모으는 ‘정치 공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택시 이용 불편을 고착화 한 ‘타다 금지법’, 아직도 출판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도서 정가제’, 1980년대 후반 이후 최저 소비량에도 세계적으로 높은 가격으로만 우유를 구매토록 만든 ‘원유가격 연동제’, 또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로도 슬슬 번지고 있는 쌀값 급등을 유도하는 ‘양곡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이상한 법안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따지고 또 오류에 대한 법적, 경제적 책임을 묻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그렇다면 ‘삼권 분립’ 대신 ‘3권 견제’가 대세가 된 지금이라면, 이런 입법부의 오류에 대해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임도 분명하다. 어떤 입법안 때문에 경제적, 실질적 피해를 보았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법정이나 제3의 중립적인 기관을 통해 배상토록 하고, 잘못된 법과 제도는 바로잡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행정심판이나 조세 심판 등을 참조하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확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지연작전’을 원천 봉쇄하는 것도 필수다. 심판을 단기간 내 의무적으로 끝내야 하고, 혹시라도 처리가 늘어진다면 입법부의 패소로 결론내도록 한다면 매번 유명무실한 ‘선거법 1년 종결’ 논란과 같은 과오도 사전 차단이 가능할 것이다.
무소불위 독주에 나선 국회가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다면,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도록 먼저 돌아봐야 할 때다.
최정호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