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달라진 기업규제…외국인 국내투자 ‘찬물’ 우려 [기업 성장 가두는 규제 그물망]

FDI, 5년 연속 최대치 경신
대내외 불확실성에도 韓 투자 수요 유지
제도 급변에 경영환경 불확실성↑
외국계 기업들, 노봉법 시행에 불안·걱정
주요국 대비 규제 부담 크단 인식 나올수도


서울 서대문구에서 바라본 서울 중구의 빌딩숲. 임세준 기자


“기업과 투자심의위원회의 관점에서 한 국가의 노동법 체계의 예측 가능성은 장기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필립 반 후프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올해 우리 기업들은 보다 첨예해진 규제 환경 속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필두로 한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이 이뤄졌고, 이달에는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시행에 들어갔으며, 노동자 범주를 늘리는 일명 ‘일하는 사람 기본법’도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국내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검토하는 해외 기업 입장에서도 한국 시장의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을 예사롭게 볼 수 없다. 규제 변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을 경우 외국인투자기업도 형사 처벌을 포함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사업에 대한 회의적 여론으로 5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해 온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가 올 들어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투기업은 투자뿐 아니라 고용과 수출 등 산업 경쟁력 전반에 기여하는 만큼, 투자 매력도 유지를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4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 기준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대비 4.3% 증가한 360억5000만달러로, 2021년부터 5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2020년(207억5000만달러)과 비교해서는 73% 증가한 수준이다. 실제 집행된 도착금액 역시 16.3% 늘어난 179억5000만달러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작년까지 한국에 대한 투자 수요는 유지된 셈이다.


그러나 투자 증가 흐름과 별개로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2000년대 이후 장기 상승 추세를 보이며 주요 사건마다 큰 폭으로 출렁였다. 재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12월 비상계엄 선포 등 정치·경제적 변동을 거치며, 해당 연도 12월 지수는 365.14로 6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에 더해, 국내 제도 변화까지 겹치며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투기업은 국내 투자 형태상 제도 변화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 공장 투자보다 기술 서비스, 유통, 연구개발(R&D) 센터 비중이 높은 만큼, 상법이나 배임죄, 노동법 등 경영 의사결정과 직결되는 규제 변화가 곧바로 사법 리스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노란봉투법은 최근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이라는 기준으로 사용자 범위가 확대될 경우,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원청이 대응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은 법안 논의 단계부터 투자 위축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사용자·노동자의 법적 범위를 확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행 이후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게 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하청노조의 교섭요구 대상 원청사업장(18일 현재)은 287곳에 달한다. 기존 원청·원청노조 중심의 교섭 구조에서 원청·하청 간 교섭이라는 새로운 틀이 도입되면서 현장의 혼선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다른 주요국과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일본·독일·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와 영국·미국 등 영미법 국가 모두 적법한 쟁의행위에는 면책을 인정하지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개정 노조법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동시에, 사용자성이 인정된 원청이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어 외투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우려는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가 외투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5.6%는 법 시행 시 ‘투자 축소 또는 한국 철수’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기업의 45%가 협력업체 계약 조건 변경이나 거래처 다변화를 검토하겠다고 응답했다. 국내 사업 축소·철수·폐지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은 40.6%, 해외 사업 확대는 30.1%로 나타났다.

지난 10일부터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가운데, 외국계 기업들은 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빠르게 마련되지 않으면 투자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도 사법 리스크 확대는 외국인 투자 유치 성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외투기업은 자본 이동의 유연성이 높아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투자 축소나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여겨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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