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안보를 넘어 산업 동맹으로


워싱턴에서 한국에 관심이 높은 주요 인사들을 만나 인연을 묻다 보면 한국에 대한 호감이 최근 더욱 커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 애착이 크다는 이도 있고, 자녀가 K-팝을 좋아해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도 있다.

이런 우호적 분위기는 워싱턴에서 대관업무를 하는 필자에게 든든한 자산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미국이 시급한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산업 파트너로서의 한국이 다른 동맹국보다 먼저 언급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미 관계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과 민주주의 가치 위에 구축된 견고한 동맹이다. 이러한 전통적 토대는 여전히 양국 관계의 중요한 기반이다. 다만 워싱턴에서는 정책을 이끄는 인사들의 세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역사적 배경보다 현재와 미래의 과제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인사들이 늘어나면서 동맹 역시 새로운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다. 공급망 안정, 제조업 경쟁력, 일자리 창출과 같은 문제가 정책 논의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동맹이 실질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특정 행정부의 정치적 성향을 넘어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미국의 정책 운용 방식 자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맹의 의미도 단순한 안보 협력을 넘어 경제와 산업 영역에서의 실질적 파트너십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 제조업과 지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투자 유치 지역의 주정부 인사들과 정치인들은 이러한 기여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워싱턴의 정책 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이 미국 경제의 과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해 왔고 앞으로 어떤 협력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워싱턴에서 필요하다.

워싱턴의 기존 싱크탱크 포럼에서는 한미 관계를 논할 때 안보와 지정학적 중요성을 중심에 두고 경제 협력을 보완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정책 흐름을 보면 경제와 일자리 문제는 유권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미국 정책의 가장 민감한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 재건과 같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산업 파트너로서 한국의 역할을 독립적으로 부각시킬 필요성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반도 안보의 틀 속에 포함됐던 산업 협력 어젠다가 이제는 그 자체로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회성 교류를 넘어 양국의 정책 관계자와 산업계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미래 과제를 심층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미국이 직면한 도전과 한국의 산업 역량을 연결해 호혜적 해법을 모색할 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또한 다른 동맹국들과의 입체적 공급망 협력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한국이 발휘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한미 동맹은 이미 성공적인 역사 위에 서 있다. 이제 그 토대 위에서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맞는 새로운 협력의 장을 만들어 갈 때다. 과거를 기억하는 관계를 넘어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동맹으로 나가야 한다.

박정우 한국무역협회 미주본부장·워싱턴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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