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기록’, 그 틈새로 본 여성의 눈물

역사 속 여자, ○○하다 장지연·윤민경·황향주 등 공저 푸른역사


조선 후기, 과부의 수절은 일반적이었다. 죽은 지아비를 그리며 평생 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녀자의 덕목이라 일컬어졌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따라 자결을 하면 ‘열녀’라는 호칭을 받아 집안은 물론, 그 지역의 자랑거리가 됐다. 역사 속에서 열녀라고 추앙받았던 그들, 과연 숨겨진 사연은 없을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의 대부분은 남성 중심적인 기록이다. 과거 절대다수의 여성들이 문맹이다 보니 기록을 남기기 어려웠고,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는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이 같은 남성 중심의 역사는 비판과 반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됐지만 사료 자체가 편향적이다 보니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장지연, 윤민경 등 신진 여성 사학자 7명이 의기투합해 여성의 행위주체성에 초점을 맞춘 여성사 ‘역사 속 여자, ○○하다’ 시리즈를 내놓았다.

사실 조선 후기에 만연했던 과부의 수절은 그 이전까지 일반적인 사회현상은 아니었다. 성종이 ‘경국대전’을 편찬하면서 ‘재가녀지소생 물서동서반직(再嫁女之所生 勿敍東西班職·재혼한 여성의 자식은 동·서반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다)’이라는 조항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관직 진출로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대부들뿐 아니라 양인, 천민도 사회적 분위기상 수절을 당연시했다.

시리즈 두 번째 편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에서 ‘여자, 수절하다’를 쓴 장지연 대전대 교수는 함양 과부 박씨와 덴동 어미, 향랑 등 세 여인의 기록을 통해 여성의 관점에서 과부 문화를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함양 박씨처럼 과부들이 자결을 선택한 것은 후대에도 기억되고 싶은 그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당시엔 결혼을 더 할수록 나쁜 조건의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커 남편의 덕을 보기보다는 덴동 어미처럼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반면 함양 박씨는 열녀로 인정돼 집안은 물론 동네의 자랑으로 남았기에 과부의 자결은 어쩌면 전략적인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함양 박씨뿐 아니라 첫 번째 편 ‘역자, 기록을 가로채다’에 나오는 절부(節婦) 조씨와 기생 가련도 후대에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한 사람들이다. 절부 조씨는 고려 말기 지식인이었던 이부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게 했고, ‘남인’을 자처했던 가련은 함께 당쟁을 논했던 사대부들에게 자신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해 서책으로 만들어 간직했다.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에선 자기 생각과 의지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관철하려 했던 여인들이 등장한다. 남인 명문가 출신 장씨 부인은 노론으로 변절한 손자와 혈연관계를 끊었고, 19~20세기 형사사건 재판 기록 ‘사법품보’엔 자기 손으로 직접 정의구현을 하려고 ‘사적 응징’에 나선 여성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에선 최초의 커리어우먼인 ‘식모’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짚는다.

장 교수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 가운데 한국사라는 거대 서사에 기록될 만한 이들은 없다”면서도 “그들 모두가 자기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며 열심히 살았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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