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연상시키는 ‘美 사모대출 위기론’…확대 해석은 경계

美 사모대출 환매 제한에 위기 확산
연기금 등 투자 확대한 LP도 점검중
“위기론 아냐…2008년 때와는 다르다
시스템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아”
일각 국내 사모크레딧 시장 위축 우려


인수·합병(M&A) 시장에 딜은 넘쳐납니다. 멀리서 보면 다 좋아 보입니다. 화려한 성장 스토리, 그럴듯한 숫자.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왜 지금일까?” “이 가격이 맞나?” “이 회사 말대로 될까?” ‘줌-인 딜리전시’는 딜의 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 너머 딜의 속 사정을 확대합니다. 재무제표의 이면부터 계약 구조, 산업환경, 규제의 틈새까지 파고듭니다. 딜을 읽는 진짜 눈, 그 출발점에 같이 서보시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사모대출 시장 부실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한 마리가 보이면 어딘가에 더 많을 것”이라며 대규모 부실 가능성을 경고했다. [AFP]



미국 사모대출펀드 부실 논란이 자본시장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신호들이 잇따르면서 국내 기관투자자도 서둘러 점검에 나섰다. 당장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확대되던 사모대출 투자 열기에 제동이 걸리고,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국내 사모크레딧 시장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모대출 투자 확대한 LP…‘위험’ 시그널에 주춤=해외 사모대출에 투자한 국내 연기금·공제회 등 주요 기관투자자(LP)가 최근 시장 점검에 나섰다. 미국 사모대출펀드의 환매 중단 사례가 잇따르며 불안이 커진 영향에서다. 기관들은 위탁운용사를 통해 투자하고 있는 만큼 펀드 내 대출이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쏠려 있지 않은지, 동일 기업에 중복 대출이 이뤄졌는지 등을 중심으로 운용 현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모대출은 사모크레딧(Private Credit)의 한 종류다.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이 제공하는 신용 투자 상품을 통틀어 사모크레딧이라고 한다. 사모크레딧은 기업 직접대출, 자산 담보대출, 메자닌, 구조화 금융 등 신용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투자를 의미한다. 사모대출은 사모크레딧 가운데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다이렉트 렌딩(Direct lending)’ 전략을 의미한다.

사모크레딧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성장했다. 미국의 도드-프랭크법 도입, 국제결제은행(BIS)의 바젤3 도입 등으로 은행의 중위험 대출 공급이 줄어들면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대출이 막혔다. 빈 자리를 KKR, 블랙스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아레스매니지먼트 등 대형 운용사들이 채웠다.

국내에서는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 공무원연금공단, 사학연금,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 새마을금고 등이 위탁운용사를 통해 사모크레딧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사모대출 투자 규모는 7조8600억원 수준이다. 각 기관별 수조원 규모의 위탁자산을 감안하면 연기금·공제회의 익스포저도 적지 않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2월 사모대출펀드 환매를 잠정 중단해 ‘펀드런’ 우려를 키운 블루아울캐피탈. [로이터]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까지…커지는 불안감=사모대출펀드에 대한 리스크 우려는 지난해부터 점차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 중소기업인 퍼스트브랜드 등을 중심으로 일부 차주 부실 사례가 나타나면서, 사모대출에 대한 익스포저와 대출 구조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제기됐다.

올해 들어서는 유동성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부 사모대출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늘어나면서 운용사들이 환매 한도를 제한하는 사례가 잇따른 것이다.

블루아울캐피탈(Blue Owl Capital)의 사모대출펀드 상품인 블루아울캐피털코퍼레이션 II(OBDC II)를 비롯해 블랙스톤(Blackstone), 블랙록 자회사 HPS인베스트먼트 등 주요 운용사들도 환매를 일부 제한하며 유동성 관리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일련의 흐름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당시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불거진 이후 BNP파리바가 관련 펀드의 환매를 중단하면서 유동성 경색으로 확산된 바 있다. 사모대출 시장에서도 차주 부실 우려와 환매 제한 사례가 맞물리며 유사한 전개를 우려하는 시각이 나온다.

상품 구조 측면에서는 금리 환경 변화에 따른 취약성이 거론된다. 사모대출은 은행 대출이 어려운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 시 차주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저신용 차주에게 변동금리로 대출을 공급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유사하다.


▶자본시장 ‘시스템 위기’ 비화 가능성 낮아=국내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2008년과 같은 시스템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자산의 다양성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부동산’이라는 단일 자산 가격 붕괴가 위기의 출발점이었다. 반면 사모대출은 다양한 업종과 기업에 분산돼 있어,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모든 펀드가 동시에 부실화할 가능성은 낮다.

한 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사모대출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헬스케어, 산업재, 소비재 등 다양한 업종에 분산돼 있어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모든 기업이 동시에 부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며 “주택가격이라는 단일 변수에 연동됐던 서브프라임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레버리지 수준 역시 차이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부채담보부증권(CDO), 합성 CDO 등 복잡한 파생상품을 통해 레버리지가 수십 배까지 확대되며 손실이 증폭됐다.

반면 사모대출은 상대적으로 구조가 단순하다. 대출채권을 기초로 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 존재하지만 비중은 낮은 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사모대출 시장에서 CLO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14%에 불과하며, 직접대출 비중이 43%로 가장 높다.

환매 중단 사태 자체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다. 사모대출펀드는 대부분 만기 전 환매가 제한되는 ‘폐쇄형’ 구조로 설계된다. 대부분 비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즉시 현금화가 어려워 환매가 가능한 ‘오픈형’으로 운영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조적으로 ‘펀드런’이 발생하기 어렵다.

현재 미국에서 문제가 되는 사모대출펀드들은 개인투자자 유입을 위해 ‘분기별 한도 내 환매’를 허용한 예외적인 구조다. 환매 요청이 한도를 초과해 지급할 수 없다고 안내하자 ‘환매 불능’으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시장 불안으로 환매 요청이 한도를 넘어서자 제한이 걸린 것이지, 곧바로 펀드 부실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블랙스톤의 사모대출펀드 비크레드(BCRED)는 분기마다 순자산가치(NAV)의 최대 5% 범위 내에서만 환매를 허용해왔다. 3월 초 자산의 7.9%에 해당하는 환매 신청이 들어오자 긴급 자금을 투입해 요청분을 모두 환매해줬다. 비크레드는 2022년 12월에도 환매 요청이 5% 수준까지 증가한 적이 있지만 환매 이후 안정을 되찾은 바 있다.


▶치명적 수준 아니지만…시장 확대 기조엔 제동=국내 기관투자자는 이번 사태가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 연기금 CIO는 “사모대출펀드 부실 사태가 LP들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LP들은 주식, 채권, 부동산, PE, 인프라 등 다양한 영역에 투자하고 있고 사모대출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위탁운용사도 블랙스톤, KKR 등 대형 운용사 중심이어서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탁운용사(GP) 간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업력이 짧은 운용사들도 대거 유입된 만큼, 이번 위기가 리스크 관리 역량과 운용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정 기업이 동일 자산을 담보로 여러 운용사로부터 대출을 받는 ‘중복 대출’ 여부를 적절히 관리했는지, 이자 지급 지연 기업 비중이 과도하게 높지 않은지 등이 주요 판단 기준으로 거론된다.

다만 연기금과 공제회들의 투자 기조에는 일정 부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공격적으로 확대돼 온 사모대출 투자 속도는 다소 조절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다른 공제회 관계자는 “개별 운용사나 포트폴리오의 문제로 볼 여지가 크다”면서도 “손실 규모가 아직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속도로 투자 확대를 이어가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에는 GP의 운용 역량과 포트폴리오 분산 구조 등을 보다 면밀히 점검하는 선별 투자 흐름이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공단 [헤럴드 DB]


▶걸음마 뗀 한국 사모크레딧 위축 우려=시장의 더 큰 우려는 따로 있다. 이번 논란이 이제 막 첫발을 뗀 한국 사모크레딧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사모크레딧에 뛰어든 것은 2021년을 전후해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대출형 펀드’ 운용이 가능해지면서 정통 바이아웃 사모펀드들이 별도 법인을 세우거나 사업부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크레딧 시장에 뛰어들었다.

IMM프라이빗에쿼티(PE)의 IMM크레딧앤솔루션(ICS), VIG파트너스의 VIG얼터너티브크레딧(VAC),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의 글랜우드크레딧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한국 사모크레딧 운용사들은 국내 시장에 맞춰 성장하고 있다. 미국이 저신용 기업에 대한 직접대출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한국은 ‘구조화 투자’가 중심이다.

대출에 주식 전환 권리를 결합한 메자닌(전환사채·교환사채 등)이 가장 익숙한 형태다. 기업이 성장하면 주식 전환을 통해 추가 수익을 얻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자와 담보를 통해 손실을 방어하는 구조다.

ICS의 HD한국조선해양 교환사채(EB) 투자가 대표적이다. ICS는 지난해 3월 HD한국조선해양이 HD현대중공업 주식을 기초로 발행한 3000억원 규모 EB를 매입했다. 이후 업황 개선으로 HD현대중공업 주가가 상승하자 5개월 만에 주식으로 교환해 매도했고 700억원대 수익을 거뒀다. 기업은 투자 재원을 확보하고, 투자자는 자본차익을 얻는 ‘윈윈’ 구조였다.

구조조정이나 자금 경색 등 특수상황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스페셜 시추에이션’ 투자도 주요 전략이다. 담보 설정, 경영 참여, 우선상환권 등 조건을 결합해 리스크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VAC는 2022년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실적이 악화된 마이리얼트립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500억원 어치를 인수했다. 향후 신규 투자를 유치할 경우 해당 사채를 우선 상환하는 조건을 설정했다.

마이리얼트립은 2024년 1월 시리즈F 투자를 유치했고 VAC는 투자금을 회수했다. 해당 투자자산을 담은 VAC 2호 펀드의 투자원금대비수익률(MOIC)은 1.22배를 기록했다.

한 연기금 CIO는 “우리나라는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사모크레딧 시장이 매우 작은 편이다. 국내는 은행이 기업 대출 대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이라며 “크레딧 하우스들이 기업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향후 성장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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