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 ‘에어건 상해’ 부부 “자기들끼리 장난치다가…” 경찰·소방에 거짓말

“알아서 병원 데려가겠다” 더니 숙소 行
이튿날 극심한 복통에 119, 응급수술 받아


이주 노동자가 상해 피해를 입은 모습. [JTBC 보도화면 갈무리]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이주 노동자의 항문 부위에 에어건을 분사해 장기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한국인 사장 측이 사건 당일 출동한 경찰과 소방당국에 허위 진술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9일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경기 화성시 만세구 향남읍 한 도금업체에서 공장 대표 A 씨(60대)가 작업대에서 몸을 숙인 채 일하고 있던 태국 출신 노동자 B 씨(40대)의 항문 쪽에 에어건을 밀착해 고압의 공기를 분사했다. B 씨는 직장이 손상돼 치료 중이다.

사건 당시 B 씨를 병원에 데려간 A 씨 부부는 다른 병원으로의 이송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119에 신고하면서 “동료와 에어건을 쏘면서 장난을 치다가 다친 것”이라고 둘러댄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인 사업주가 취재진 앞에서 또 다른 이주 노동자에게 사건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이고 있다. [JTBC 갈무리]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후 8시 9분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 앞에서 “외국인 환자인데 장 파열이 됐다. 아주대병원에 왔지만, 진료가 되지 않는다.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A 씨 부부는 현장에 출동한 수원소방서 구급대원들에게 “(환자가) 동료와 에어건으로 장난을 친 뒤 복통이 생기고 복부에 불편감이 시작됐다고 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구급대원들은 B 씨의 외국인 등록카드 확인을 통해 그의 체류 기간이 경과한 것을 파악하고, 매뉴얼에 따라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A 씨 아내는 현장에 나온 수원영통경찰서 지구대 경찰관들에게 “(환자가) 지인들과 장난을 치다가 다쳤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경찰은 단순 사고로 인한 부상자로 추정했다. 피해자가 구급차에 실려 누워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직접 진술을 받지 않았다.

또 경찰은 수원출입국외국인청에 B 씨의 신원 조회를 요청한 결과 불법체류자인 것을 파악했지만,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환자는 통보 면제 대상에 해당해 우선 치료받아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별도의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후 A 씨 부부는 “환자를 알아서 병원에 데려가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경찰과 소방당국은 병원 이송이나 추가 조사를 하지 않고 현장에서 상황을 종결했다.

그런데 A 씨 부부는 말과 달리 B 씨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숙소로 데리고 돌아왔다. B 씨는 이튿날 새벽부터 심한 복통을 느꼈고, 119를 불러 오산한국병원을 찾아 수술받았다. 의료진은 외상성 직장천공 진단을 내렸다.

B 씨를 돕고 있는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당시 B 씨는 배에 10㎝ 크기의 구멍이 뚫려 출혈이 발생해 당장 수술이 필요한 심각한 상태였다”며 “그러나 B 씨는 수술 전날 방문했던 병원에서 비용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등 올바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상해 혐의로 A 씨를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경찰은 B 씨의 파견업체 대표 및 그의 동료인 외국인 노동자를 참고인으로 잇달아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건 당일 출동한 경찰관과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도 사실관계를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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