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환율 ‘공포’…물가·소비·기업·금융 연쇄충격 온다

미이란 휴전 ‘흔들’…불안한 환율
①수입물가 상승에 소비자물가 순차영향
②민간소비 감소로 경제성장 하방 압력
③수입기업 충격…수출기업에도 ‘먹구름’
④달러 유출 ‘썰물’…금융시장 안정 흔들
향후 환율급락 가능성, 또다른 충격 우려


미국-이란 간 종전 협상 결렬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하면서 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13일 오전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왼쪽).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한 시민이 라면을 살펴보고 있다. [윤창빈 기자·헤럴드 DB]


미국-이란 간 휴전 합의로 진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이 협상 결렬에 즉각 상승하며 ‘1500원 공포’가 다시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환율(주간거래 종가 기준)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7일까지 9영업일 연속 1500원을 넘겼다. 지난달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92.5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월(1488.87원)도 넘어서며 역대 네 번째에 올라섰다.

7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의 2주간 휴전 결정에 환율은 1400원대로 떨어지며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지만, 이어진 협상에서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는 소식에 재차 뛰었다. 13일 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95.4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협상 결렬 여파가 개장과 동시에 반영됐다.

지난해 하반기 수급 불균형이 촉발한 원화 약세가 ‘중동 사태’라는 외부 충격으로 이어지면서 1500원리스크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고환율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수입 물가 상승부터 시작해 소비 위축과 그에 따른 경제성장률 하락, 기업들의 경영 환경 악화, 금융 시스템 불안 등 한국 경제 전반이 연쇄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1단계: 수입물가 상승…소비자물가도 시차 두고 영향=금융권에 따르면 고환율은 가장 먼저 수입물가를 끌어올린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가스·곡물 등 달러로 거래되는 수입 품목들이 즉각적으로 비싸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월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1.1% 오르며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3월은 중동 사태 여파가 본격 반영되면서 상승폭이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은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1~3개월 뒤에 소비자물가도 오르는 것으로 본다. 수입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이어지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 번째는 ‘간접 경로’다. 원유나 철광석처럼 국내에 들어와서 한번 더 가공되는 원재료·중간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 품목들은 우선 생산자물가에 먼저 반영되고 이후 유통 단계를 거쳐 소비자물가에 전달된다. 지난 2월 기준 생산자물가도 이미 6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전조 신호다.

수입물가가 소비자물가로 직결되는 경로도 있다. 휘발유·경유나 수입 식재료 등 수입 소비재는 물가에 거의 즉각 반영된다. 중동 사태 직후 주유소 기름값이 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한 것도 이 직접 경로를 억제하려는 조치였다.

한은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포인트 오르는 경향이 있다. 지난 2월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을 2.2%로 제시했다. 한은은 물가 전망에 적용한 환율 수준을 공개하진 않지만 2월 평균 환율(1448.4원·주간종가 기준)으로 추산하면 올해 평균 환율이 1500원일 경우 물가상승률은 2.3%까지 오를 수 있다. 여기에 고유가 등 다른 요인까지 더하면 물가상승률은 2% 중후반까지 치솟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물가상승률 전망을 0.9%포인트 올린 2.7%로 올려잡았다. 주요 IB(투자은행)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2월 말 평균 2.0%에서 3월 말 2.4%로 0.4%포인트 올랐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월 전망치(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단계: 실질소득 감소…소비 위축에 경기 하방 압력=물가 충격은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임금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데 체감물가가 뛰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식료품·에너지 등 필수재 지출 외에는 허리띠를 졸라맬 가능성이 커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월평균 실질임금은 2024년 357만원으로 1년 전(355만원)보다 2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이 수치는 2019년(351만원)부터 6년째 350만원대에 갇혀있다.

민간소비 감소는 내수 침체로 이어지고, 이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지난해 연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였는데 그중 최종소비지출의 기여도는 1.2%포인트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민간 소비지출은 0.6%포인트였다. 그만큼 민간소비가 줄면 성장 동력도 약해지는 구조인 셈이다.

소비자들의 심리는 이미 얼어붙었다. 한은이 발표한 ‘2026년 3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5.1포인트 떨어진 107이었다. 비상계엄 사태가 터졌던 2024년 12월(-12.7포인트) 이후 1년 3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소비자심리지수란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100보다 크면 장기평균보다 낙관적임을, 100 이하이면 그 반대를 뜻한다.

특히, 환율과 유가가 동시에 오르는 최근 상황은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의 형편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에너지 비용 지출 비중은 10%로, 전체 평균(4.8%)의 두배를 웃돌았다. 10일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소득 기준 하위 70%에 해당하는 3256만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포함한 것 또한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3단계: 수입기업 직격탄…장기화시 수출기업도 ‘먹구름’=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은 유리하다는 통념이 있다. 수출 기업은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아도 환율이 오르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 기업의 경우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사들이더라도 비용을 더 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환율이 떨어지면 반대 상황이 된다.

연평균 환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던 지난해에도 수출은 반도체 호조와 함께 전년 대비 3.8% 오른 7097억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하지만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 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로 수익을 내는 기업도 생산 과정에서 중간재를 수입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고환율 상황이 길어지면 원가 상승 부담도 커지게 된다. 해외 거래처에서 달러 표시 수출 가격을 낮추라는 압박도 거세질 우려가 있다. 자칫 생산 비용만 늘고 수익은 정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가 1월 공개한 ‘2026년 경영환경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해외 바이어(구매자)로부터 단가 인하 압박 ▷국내 물가 전체적인 상승 등에서 부담이 크다는 의견을 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경영계획과 가격 재조정 등으로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갈 뿐만 아니라 헤지(위험 회피 전략)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수입 기업들의 경영 위기는 이미 현실이 됐다. 원자재를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하는 기업과 달러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원가와 금융 비용이 동시에 치솟았다. 항공·철강·에너지 업계는 특히 타격이 크다. 아시아나항공은 고환율에 따른 운항비·정비비 증가 등이 겹치며 지난해 342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정유사들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연간 1000억원 이상의 환차손이 발생한다는 추산 결과도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최근 이슈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공급망 붕괴로 석유·화학 설비 가동률이 떨어지고 반도체·자동차 등 제조업 생산에 제동이 걸려 수출이 둔화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4단계: 외국인 ‘셀 코리아’ 행렬…금융 안정 리스크 부상=고환율이 장기화하면 금융 시스템도 출렁일 수도 있다. 우선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 자산 보유에 따른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우려가 커지고, 이는 소위 ‘셀 코리아’로 불리는 주식·채권 시장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1달러 샀다고 가정하면, 환율이 2000원으로 오르면 주가가 그대로더라도 이 투자자의 달러 환산 주식 평가액은 0.5달러로 반토막 난다. 고환율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주식 비중을 축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고환율 장기화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 경로에도 하방 압력이 세지면 한국 시장 투자에 대한 위험 부담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 이탈은 중동 사태 이후 급격히 늘었다. 지난달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35조8800억원을 순매도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한달 만에 갈아치웠다. 또한 이달 2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11거래일 연속 순매도했는데, 이는 2년6개월 만에 최장 기록이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 달러로 환전하는 수요가 늘어날 경우 달러는 더 오르고, 환율 상승은 또다시 외국인 이탈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될 우려가 있다.

은행들의 건전성에도 ‘비상등’이 켜지면서 금융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 고환율이 유지되면 은행 외화 자산의 원화환산액 증가, 통화파생거래 신용위험 증가 등에 신용RWA(위험가중자산)가 늘어나면서 은행의 주요 건전성 지표인 자본비율이 떨어질 수 있다. 위험가중자산이란 빌려준 돈을 위험도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적용해 계산한 자산을 말한다.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면 은행 건전성 지표인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보통주자본(CET1)비율’ 등이 떨어진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고환율 상황은 은행권의 자본비율을 각각 0.2%포인트, 0.5%포인트씩 떨어뜨렸다.

중동사태 종결시 환율 급락 시나리오도…또다른 리스크 부상=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고환율을 촉발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된다고 해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이 경우에도 한국 경제에는 또 다른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중동 사태 종결 기대감이 형성돼 유가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원화와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다시 강해지면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수출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1500원대 환율을 전제로 수출 단가를 설정하고 사업 계획을 짠 기업들은 원화로 환산한 매출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드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수개월치 달러 수출 대금을 환전하지 않고 외화예금으로 쌓아둔 기업들의 손실도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또다른 경제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높은 환율에 달러로 미국 시장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 또한 원화 환산 가치가 급락하며 평가 손실을 볼 우려가 있다.

특히 이달 한국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됐고, 시장 안정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으로 해외 자금을 국내로 유인하는 ‘환율 안정 3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는 등 원화 가치를 끌어올릴 추가 요인도 쌓여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환 헤지 전략 등을 담은 ‘뉴 프레임워크(new framework)’도 결과물이 나오면 원화 가치는 더 가파르게 뛸 수 있다.

외환당국 한 관계자는 “WGBI 편입이나 환율 안정 3법,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 등 환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상황에서 중동 사태가 종결된다면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달러를 사들이면서라도 환율 하락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기 전까지만 해도 환율은 떨어지는 추세였다.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1467.14원에서 올해 1·2월 각각 1456.28원, 1448.38원 등으로 떨어졌다.

김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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