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경남지노위 ‘깜깜이 판정’…노란봉투법 ‘위험한 선례’ 우려


“진짜 사장 나와라!”

지난달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이후 곳곳에서 이런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산업 현장의 화두는 단연 ‘원청의 사용자성’으로 모아진다. 하청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겠다는 법의 취지가 선명한 만큼, 그 적용 기준 또한 엄격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내놓은 판정을 두고 ‘진짜 사장’을 가리는 원칙을 되레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지노위는 지난 16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웰리브지회가 한화오션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에 대한 시정 신청을 인정했다. 다만 실질적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포함한 세부 판단은 향후 결정문에 담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구체적인 법리 판단 없이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먼저 명령하면서 사실상 ‘깜깜이 판정’을 내린 셈이다.

이번 판정이 더 석연치 않은 이유는 웰리브의 사업 구조 때문이다. 웰리브는 한화오션의 전속 하청이 아니다. 사내에서는 다른 급식업체와 경쟁하는 동시에, 전국 50여개 사업장에서 급식 사업을 펼치는 독립 중견기업이다. 전형적인 ‘원청 종속형 하청업체’와 거리가 있다.

이처럼 특이 사례인 만큼 판단 기준은 더 엄격해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용자성 인정의 핵심 기준은 원청이 하청 근로조건에 대해 ‘구조적 통제’를 행사하느냐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작업시간, 인력 배치, 휴게시간 등 근로조건의 실질적 결정권을 제약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화오션은 노란봉투법 시행 직후, 선박 건조 공정에 직접 참여하며 오직 한화오션 업무만 수행하는 하청지회와는 이미 교섭 공고를 진행했다.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는 사용자 책임을 이행한 것이다.

반면 통상적인 도급계약에서 나타나는 업무 지시나 조정은 계약상 관리 수준일 뿐, 구조적 통제로 보기 어렵다. 고용노동부 해석 지침 역시 급식업체에 ‘식사 시간에 맞춰 조리·배식업무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의 통상적 요구는 일반적 지시권일 뿐 사용자성 인정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남지노위가 구체적 판단 근거를 밝히지 않고 교섭권을 인정한 것은 정부 지침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사용자성의 범위를 무한정 넓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현재 웰리브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원·하청 상생안에 따른 성과급 지급이다. 선박 건조 실적과는 무관한 독립 사업체 노동자들까지 원청의 경영 성과를 공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조선업뿐만 아니라 건설, 자동차 등 도급 구조 기반의 산업 전반에 파장이 미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경남지노위가 사안의 민감성과 법적 파장을 의식해 본질적 판단 책임은 중앙노동위원회에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핵심 쟁점은 유보하고 형식적 절차만 지시, 현장 혼선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아예 외주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는 곧 하청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에서 파견·용역 등 소속 외 근로자는 지난 2023년 72만4331명에서 2025년 66만4845명으로 8.2% 줄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외주 축소 흐름은 더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장의 혼선은 업종을 막론하고 임계치에 다다랐다. 최근 유통업계에서 벌어진 화물연대 물류센터 출입구 봉쇄 사태 역시 교섭권 요구가 발단이다. 원청인 BGF리테일은 배송 기사들이 BGF로지스가 아닌 외부 운송사와 개별로 계약을 맺고 있어 직접 교섭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나, 노동계는 원청의 책임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이처럼 산업 전반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모호한 행정 지시는 대립만 더 키울 수 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사용자성에 기반한 직접 교섭이다. 그러나 판단 근거조차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설익은 행정이 반복되면 갈등만 늘게 된다. 경남지노위는 무엇이 진짜 사장의 기준인지 납득 가능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책임 없는 행정은 노동권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산업 현장만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