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 남자야?”…파격적인 존재감, 폭력없이 저항한 ‘펑크의 대모’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패티 스미스, 1975년 정규 앨범 ‘호시스’(Horses) 발매
규율과 편견에의 반항…남녀 모든 뮤지션에 존경받는 여성 록커
철학과 문학, 시적 언어로 점철된 음악, ‘삶과 저항’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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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펑크의 거친 에너지와 같은 시대의 균열을 공유했지만, 저항을 자기파괴의 형식으로 끝내지 않았다. 기존 질서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여성의 순응적 이미지, 록 음악계에 암묵적으로 전제되던 남성적 규칙, 시와 음악을 분리하던 장르의 경계를 뒤섞으며, 그는 저항이 파괴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게티이미지/Photo by Lynn Goldsmith]


권력과 저항, 저항과 해방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권력은 안정이라는 명목 아래 규율을 만들고, 사회는 규율에 순응하는 태도를 성숙이나 합리성의 이름으로 승인한다. 그러나 무수한 역사 속에서, 사회의 확장은 순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성 참정권 운동, 노동 운동, 민권 운동, 반전 운동 등은 때로 불온함이나 무질서로 명명됐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질서가 배제해온 주체들을 공적 영역 안으로 진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예컨대 1848년 미국 뉴욕주 세네카폴스에서 열린 여성권리대회는 정치 참여를 남성 시민의 영역으로 한정하던 규율을 침범했지만 이후 1920년 미국 수정헌법 제19조 비준으로 여성 참정권을 제도화하는 흐름의 출발점이 됐다. 1886년 5월에 발생한 美 시카고 헤이마켓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제 요구 시위는 생산 질서에 대한 순응을 거부한 사건으로, 이후 노동자를 단순한 인력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게 만드는 상징이 됐다. 1955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시작된 버스 보이콧 또한 인종 분리를 ‘질서’로 정당화하던 체계를 흔들었고, 흑인 시민을 동등한 공적 주체로 다시 배치하는 민권 운동의 결정적 장면이 됐다.

이 점에서 저항은 단순한 반항과 구분된다. 반항이 기존 질서에 대한 비합리적인 즉각적 거부라면, 저항은 자신을 설명할 언어와 위치를 부여받지 못한 주체가 사회 안에서 자기 존재를 다시 배치하려는 행위다.

그리고 저항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편함을 동반한다. 이미 안정된 것으로 간주된 질서의 언어를 교란하고, 정상성의 바깥으로 밀려난 목소리가 사회 내부로 다시 들리도록 침범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은 이러한 저항의 형식이 가장 빠르게 드러나는 영역 중 하나였다. 음악은 제도 정치나 공적 언어보다 먼저 시대의 불만과 균열을 감지해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 남부 흑인 공동체에서 형성된 블루스(blues)는 억압받는 삶의 피로를 노래했고, 1930년대 노동 운동과 1960년대 민권·반전 운동의 흐름 속에서 포크(folk)는 전쟁과 국가 권력에 질문을 던졌다. 1950년대 중반 등장한 록(rock)은 청년 세대가 기성 질서와 충돌하는 감각을 사운드로 전환해 사회 전면에 내던졌으며, 1970년대 중반의 펑크(punk)는 그 충돌을 더욱 짧고 거칠고 즉각적인 언어로 밀어붙였다. 이때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감각 대상이 아닌, 특정 세대와 집단이 자신들의 감각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는 매체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저항이 언제나 해방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기존 질서를 부수려는 움직임은 그 과정에서 때로 자기파괴와 폭력성의 형식을 띠기도 한다. 억압에 대한 분노가 강할수록 표현은 더 즉각적이고 공격적으로 나타나지만, 파괴가 늘 새로운 언어의 획득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항이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와 침범의 행위라면, 해방은 그 거부 이후 새로운 언어와 위치를 획득하는 일이다. 저항은 문을 흔드는 일이며 해방은 그 문 너머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저항이 해방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또 다른 무언가’가 요구된다.

I am an Antichrist
I am an anarchist
I wanna destroy the passersby
‘Cause I, I wanna be anarchy
(나는 적그리스도야
나는 무정부주의자야
지나가는 사람을 파괴하고 싶어
난 무정부주의자니까)
- 섹스 피스톨즈 ’영국의 무정부주의자‘(Anarchy In The UK) 中 -


섹스 피스톨즈는 당시 당연하게 사회에 요구되던 품위와 절제, 애국심과 도덕성, 음악적 숙련이라는 모든 기준 자체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방송에서는 늘 거친 발언을 통해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의 라이브 공연장은 때때로 피가 튈 정도로 폭력적이고 원초적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저항은 조롱과 훼손, 욕설과 불협화음, 거친 몸짓이었고, 이들에게 저항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 아닌, 기존 질서가 인정하는 문법의 차용을 거부하고 그 질서 안에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게티이미지/Photo by Bettmann]


펑크, 규율을 훼손하는 가장 ‘즉각적인’ 저항
1970년대 후반 영국 펑크 운동의 핵심에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있었다. 이들은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젊은 저항’의 가장 거칠고 즉각적인 사례로 음악사에 기록돼 있다. 이들이 등장한 시기의 영국 사회는 경제 침체, 청년 실업, 계급적 불만, 기성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이 누적돼 있었고 이들의 음악은 그 균열을 향한 분노가 음악의 형식으로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당시 당연하게 사회에 요구되던 품위와 절제, 애국심과 도덕성, 음악적 숙련이라는 모든 기준 자체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방송에서는 늘 거친 발언을 통해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의 라이브 공연장은 때때로 피가 튈 정도로 폭력적이고 원초적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저항은 조롱과 훼손, 욕설과 불협화음, 거친 몸짓이었고, 이들에게 저항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 아닌, 기존 질서가 인정하는 문법의 차용을 거부하고 그 질서 안에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은 완성도보다 충격에, 설득보다 침범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했다.

레드 제플린(Led Zepelli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로 대표되던 복잡하고 고급화되던 대중음악 흐름을 부순 것도 섹스 피스톨즈였다. 완벽한 기술, 정교한 구성, 긴 러닝타임, 철학적 콘셉트 같은 요소들이 음악적 우월성의 근거로 작동하던 시대에 펑크는 거친 코드, 단순한 리듬, 직설적인 언어로 맞섰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연주하는가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였다. 펑크는 음악이 전문가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거부했고, 발화의 권리를 무대 아래의 청년들에게 되돌려놓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이들의 저항은 양면성과 한계를 가졌다. 펑크는 기존 질서의 허위, 품위의 가식, 권위의 공허함을 드러내는 데 탁월했지만 파괴는 언제나 첫 번째 행위일 뿐이다. 문을 부수는 행위는 강력하고 강렬하지만 부순 이후의 세계는 자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서를 거부하는 것과 자기 언어를 획득해 새롭게 해방된 세상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분노가 자기 자신을 지속시킬 언어로 전환되지 못할 때, 저항은 쉽게 자기소모와 자기파괴, 자학적인 저항으로 기울어진다.

펑크의 거친 저항은 분명 당시 청년 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파괴 이후에 무엇이 남는가다. 조롱과 파괴는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자기 이해를 세우지 못한다. 기존 질서를 거부한 사람이 다시 자기 자신으로 서기 위해서는, 부정(否定) 이상의 언어가 필요하다.

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바로 이 대목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뮤지션이다. 그는 펑크의 거친 에너지와 같은 시대의 균열을 공유했지만, 저항을 자기파괴의 형식으로 끝내지 않았다. 기존 질서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여성의 순응적 이미지, 록 음악계에 암묵적으로 전제되던 남성적 규칙, 시와 음악을 분리하던 장르의 경계를 뒤섞으며, 그는 저항이 파괴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섹스 피스톨즈가 규율을 찢는 방식으로 저항했다면, 패티 스미스는 규율 바깥에서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문법을 세우는 방식으로 저항한 뮤지션이었다.

Jesus died for somebody‘s sins, but not mine
Thick, heart of stone, my sins, my own
People said, “Beware”, but I don’t care
Their words are just rules and regulations to me, me
(예수는 인간의 죄를 위해 희생했지만, 나의 죄는 여전히 남아있지
두껍고 돌같은 심장, 나의 죄, 내 자신의 죄악
사람들은 말하지, ‘조심하라’고, 어차피 신경 안 써
그들의 말은 그저 규칙과 규정일 뿐이니까)
- 패티 스미스, ‘글로리아’(Gloria) 中 -


당시 화제가 되었던 ‘호시스’ 앨범 흑백 커버에서 스미스의 남성도 여성도 아닌 다른 존재인 듯한, 강렬한 듯 공허한 무채색의 이미지는 “글래머화되지 않은 양성적인 모습”으로 美 의회도서관에 공식 기록돼 있다. [‘호시스’ 앨범 커버/Photo by Robert Mapplethorpe]


패티 스미스, 규율에 맞서는 ‘주체성’이라는 저항
패티 스미스는 펑크 태동기의 거친 에너지와 같은 시대의 균열 안에 있었지만, 그 에너지를 파괴와 자기소모의 방향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의 저항은 기존 질서를 부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질서가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1975년 발표된 데뷔 앨범 ‘호시스’는 그 출발점이었다. 앨범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록 신(scene)과 시 낭독, 스포큰 워드, 거친 로큰롤의 에너지가 한 몸으로 뒤섞인 작품으로, 美 의회도서관은 ‘호시스’와 패티 스미스를 ‘펑크의 대사제’이자 ‘록의 계관시인’으로 소개하는 동시에 앨범이 문학적이고 시적이며 급진적인 록앤롤을 다뤘다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패티 스미스는 당시 록 음악이 요구하던 남성적 태도와, 여성 가수에게 요구되던 순응적 이미지 모두에 비켜서 있었다. 화제가 되었던 ‘호시스’ 흑백 커버에서 스미스의 남성도 여성도 아닌 다른 존재인 듯한, 강렬한 듯 공허한 무채색의 이미지는 “글래머화되지 않은 양성적인 모습”으로 의회도서관에 기록돼 있다.

그의 목소리 또한 기존 규율에 들어맞지 않았다. 패티 스미스는 ‘잘 부르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의 보컬은 노래와 낭독, 외침과 중얼거림, 기도와 선언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는데, 대표곡 ‘글로리아’(Gloria)에서 그는 록 보컬의 정형화된 멜로디를 따라가기보다 말을 밀어붙이듯 리듬을 만들고 문장을 점진적으로 음악의 에너지로 바꿔가며 곡을 끌어올린다. ‘버드랜드’(Birdland)에서 그 방식은 더욱 극단화된다. 노래는 정돈된 선율로 진행되지 않고 말과 비명, 리듬과 환각이 뒤섞인 하나의 발화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이때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게 들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의 음악적 질서가 허락하지 않았던 언어를 자신만의 주체적인 방식으로 밀어올리 듯 존재했다.

이같은 방식은 파괴적이지만 폭력적이지 않았다. 패티 스미스는 기존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성별 규범을 흔들고, 종교적 이미지와 거리의 언어, 시인의 문장과 록의 육체성, 사회적 저항의 목소리를 한꺼번에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문법을 새로 세우는 방식이었다. 그에게 저항은 단지 ‘아니다’라고 외치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언어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까웠다.

이 점에서 패티 스미스는 펑크의 한계를 자신만의 ‘주체화’된 방식으로 넘어선다. 섹스 피스톨즈가 질서를 찢고 부수는 방식으로 기존 규율과 억압의 폭력성을 드러냈다면, 패티 스미스는 그 규율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로운 예술적 언어로 조직했다. 그는 여성 록 보컬의 위치를 다시 썼고, 시가 록이 될 수 있으며, 록이 선언문이 될 수 있고, 한 인간의 목소리가 장르의 경계 자체를 교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근본적으로 그의 저항은 자기파괴가 아닌 ‘자기 구성’에 가까웠다. 스미스는 규율 바깥으로 밀려난 언어들을 모아 자신의 자리로 재구성했다. 펑크가 문을 부쉈다면, 패티 스미스는 그 문 너머에서 자신이 설 문장을 세웠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저항은 해방의 모습을 갖게 된다. 해방은 무언가를 부수는 순간을 넘어, 더 이상 사회 혹은 타인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와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

the shepherds and the soldiers
lay beneath the stars
exchanging visions and laying arms
I awakened to the cry
(목동들과 병사들은
별빛 아래 누워 각자의 미래를 나누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 외침에 눈을 떴다)
– 패티 스미스, ‘피플 해브 더 파워’(People Have the Power) 中 -


패티 스미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저항과 해방의 간극이다. 저항은 기존 질서에 맞서는 행위지만, 해방은 그 맞섬 이후 더 이상 타인의 규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마저 파괴에 맡기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패티 스미스는 펑크가 열어젖힌 균열 속에서 자멸하지 않고, 자신이 설 자리를 언어와 음악으로 구축했다. [게티이미지/Photo by Jim Dyson]


저항의 사회적 역할은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는 데서 시작된다.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승인해온 규율을 흔들고, 그 규율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다시 공적 장 안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저항은 불편하고, 거칠며, 기존 질서의 관점에서는 불온하지만, 때로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된다.

섹스 피스톨즈의 펑크가 중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기성 질서가 요구하던 사회적 순응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1970년대 영국 사회의 균열을 드러냈다. 그 충격은 필요했다. 누군가가 질서의 표면을 찢어야만, 그 아래에 쌓여 있던 분노와 배제가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항이 충격에만 머물 때, 그것은 쉽게 소모된다. 기존의 언어를 거부하는 일과 그 이후 자신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갖는 일은 같지 않기에, 파괴는 억압의 구조를 드러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한 인간이 다시 설 자리를 마련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저항은 언제나 다음을 요구한다. 부정 이후의 구성, 분노 이후의 형식, 침범 이후의 자리.

패티 스미스가 도달한 지점은 바로 그 ‘다음’에 있다. 그는 펑크의 에너지를 공유해 낡은 사회적 규범과 규율을 겨냥했지만 그것을 자기파괴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대신 시와 음악, 낭독과 노래, 여성성과 남성성, 성스러움과 불경함의 경계를 재배열하며 자신이 발화할 수 있는 조건을 직접 만들어냈다. 그의 음악은 기존 규율에 대한 거부인 동시에 그 거부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하나의 형식이었다.

패티 스미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저항과 해방의 간극이다. 저항은 기존 질서에 맞서는 행위지만, 해방은 그 맞섬 이후 더 이상 타인의 규정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마저 파괴에 맡기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패티 스미스는 펑크가 열어젖힌 균열 속에서 자멸하지 않고, 자신이 설 자리를 언어와 음악으로 구축했다.

그렇기에 그가 남긴 것은 단지 ‘펑크의 전설’이나 ‘강렬한 음악’뿐이 아니다. 패티 스미스는 저항이 한 인간을 소진시키는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이 아닌, ‘자신다움’으로 세상에 순응하지 않음으로써, ‘주체성’을 통해 억압과 낡은 규범에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권력이 허락하지 않았던 언어로 자기 자신을 정렬시키는 의지, 저항이 해방에 가까워지는 순간은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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