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몰락…‘아버지’는 위기일까? [북적book적]

5000년에 걸친 ‘아버지의 역사’ 조명
부양자인 동시에 권력자로서 이중적 역할
부성, 권력·사랑과 연관…시대마다 변화


노먼 록웰 ‘집을 떠나며’(1954).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1954년 화가 노먼 록웰이 그린 ‘집을 떠나며’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먼지 덮인 트럭의 발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들은 밝은색 양복을 갖춰 입고 기대감 어린 눈길로 대학으로 가는 길 쪽을 바라보고 있다. 반면 몸을 아들과 반대 방향으로 수그린 아버지는 낡은 데님 작업복 속 어깨가 움츠러든 모습이다. 대학으로 떠나는 아들과 떠나고 싶지만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아버지의 엇갈린 미래는 해소되지 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역사학자 어거스틴 세지윅의 신간 ‘아버지의 역사’는 5000년의 역사를 통해 ‘부성(父性)’이라는 개념이 언제 탄생했고,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들여다본다.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단순한 가족 내 문제를 넘어 권력, 사랑, 종교, 정치 등과 연결된 역사적 개념으로 탐구한다.

현대 사회에서 언급되는 ‘남성성의 위기’는 지금 갑자기 튀어나온 문제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부성의 역사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정체성 위기의 역사로 요약된다. 역사적 변화와 혁명의 순간마다 아버지의 근원적인 이야기는 붕괴하고, 재정립됐다.

저자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헨리 8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밥 딜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시대마다 남성성이 어떤 위기에 직면했고,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새로운 아버지 상을 만들어 냈는지 보여준다.

특히 가족 구성원을 사랑으로 돌보는 부양자인 동시에, 가부장제 속에서 누구보다 가족을 억압하는 권력자로 위치했던 아버지의 이중적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고대 사상가들은 아버지를 단순한 부모가 아니라 질서와 통치의 모델로 봤다. 가족은 국가의 축소판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사적 가정을 해체하고 공동 양육을 제안하며 아버지를 본성이 아닌 제도의 문제로 전환했다. 플라톤에 반박하려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발생 연구를 통해 아버지의 권위를 정당화하며 가정을 정치 질서의 기초로 봤다. 아버지가 선한 가정을 만들고 선한 사회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버지를 악의 원천으로 봤다. 아버지는 번식에 필요한 성관계를 통해 자녀에게 원죄를 물려줬기 때문에 선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며 아버지의 권위를 신에게 귀속시켰다. 사랑과 도덕의 근원인 신의 절대적 권위와 함께 인간의 아버지도 권력을 유지하면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지배하는 아버지 사이의 긴장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근대로 접어들어 헨리 8세는 부성을 정치와 결합했다. 혼인과 출산을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삼은 그는 성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왕에게 복종할 것을 법으로 명했고, 유럽에서 ‘부권 절대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아버지라는 개념을 정치적 권위의 언어로 사용하면서도 사적 책임은 회피해 모순을 드러냈다. 랠프 월도 에머슨과 소로의 경우 생계를 위한 돈과 부성의 책임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며 복잡한 부성의 양상을 보였다.

다윈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아이들이 점차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는 아버지를 ‘인간다움을 가르치는 존재’로 생각하면서 자녀가 성장해서도 개입주의 방식을 유지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자식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을 정상적이며 심지어 건강한 것으로 간주했다. 가부장의 통제를 정당화하고, 가족 내 갈등을 일상적인 과정으로 봤다.

밥 딜런은 가부장적 ‘아버지’가 친구 같은 ‘아빠’로 대체되는 시대 속에서 남성의 혼란을 나타냈다. 친자 관계가 확실하게 입증되고, 아버지들이 자녀 돌봄에 참여하면서 기존의 부성 개념은 흔들렸다.

이처럼 아버지 혹은 남성성의 위기는 비단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반복돼 왔다. 지금은 부성이 위기에 봉착했다기보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셈이다. ‘아버지다움’은 고정된 본능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인 것이다.

저자가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재밌고, 포옹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가족의 형태와 성별의 역할이 달라지고, 아버지가 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좋은 아버지’라는 기준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현대의 아버지상을 새롭게 상상해야 할 때다.

아버지의 역사/어거스틴 세지윅 지음·김재용 옮김/지식의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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