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광기 사이…조성진이 만든 ‘두 개의 우주’ [고승희의 리와인드]

5, 9일 뮌헨필, 샤니와의 만남
지적 설계로 구축한 음악 건축물
베토벤 1번의 햇살 같은 패기
프로코피예프의 용암 같은 광기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협연 [빈체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아노는 괴물이었다. 오케스트라를 압도하고 집어삼킨다. 5분 가까이 이어지는 카덴차. 조성진의 얼굴은 야수처럼 타올랐다. 단단하게 받치고 선 저음 위로, 긴장감 넘치는 중간 음이 쌓였다. 그 위로 오른손이 만들어내는 칼날 같은 고음이 날렵하게 허공을 베었다. 명징하게 쏟아지는 음표 안에서 차가운 침착함이, 그 위로 이글거리는 야성이 도사렸다.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몸을 빌려 시공간을 뒤틀었다. 조성진의 손끝에서 관객은 ‘두 개의 우주’를 만났다. 지난 5일(예술의전당), 9일(롯데콘서트홀)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만남을 통해서다. 독일 남부 악단의 자존심인 뮌헨필이 깊고 풍부한 사운드로 판을 깔자, 그 위를 뛰노는 조성진은 두 얼굴을 꺼내 보였다.

뮌헨필과의 만남에서 조성진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첫날 공연에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둘째 날 공연에선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다. 두 번의 연주에서 조성진은 자신의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익숙한 초상’을 지웠다.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왕관을 쓴 피아니스트의 서정성, 유리알처럼 맑은 음색,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의 미학…. 이번엔 달랐다.

조성진은 베토벤에선 ‘햇살 같은 청년’이, 프로코피예프에선 ‘용암 같은 파괴자’가 됐다. 그의 두 얼굴은 빛과 어둠이었고, 천사와 악마,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였다. 하지만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고전의 균형과 명징함을 지닌 베토벤, 현대의 균열과 폭발을 갖춘 프로코피예프가 쓴 양극단의 음악 언어는 조성진 안에서 하나가 됐다.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협연 리허설 [빈체로 제공]

조성진이 구축한 세계는 오차 없이 설계된 청각적 건축물이었다. 그는 감정으로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악곡의 골격을 세운 뒤, 색채를 입혔다. 베토벤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도, 프로코피예프가 난폭하지만 선명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아름다운 음색’을 뛰어넘어, 거대한 구조를 통제한 ‘건축가’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청년 베토벤’의 작품이다. 이 곡은 2번보다 늦게 작곡됐지만, 먼저 출간된 탓에 ‘1번’이 붙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고전주의 위에 서있지만, 베토벤의 반항과 팽창이 꿈틀거린다. 조성진은 그 ‘미묘한 균형’을 정확하게 잡아채 ‘청년의 패기’를 보여줬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손가락이 피아노 위로 내려앉아 음 하나하나가 공기 속에서 떠올랐다. 타건은 가벼웠지만, 그 안에 곧은 심지가 세워졌다. 마치 잘 세공된 다이아몬드 같은 굳건함이 그려졌다. 조성진의 하행 글리산도는 건반을 훑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었다. 갓 정제된 진주알이 은빛 파편처럼 흩어졌다. 그 안엔 젊은 베토벤 야심과 혈기가 숨어 있었다.

조성진은 이번에도 ‘리듬의 마법사’로의 모습을 여실히 증명했다. 베토벤에서 유독 빛난 건 리듬이었다. 그는 프레이즈를 단순히 ‘노래’하지 않았다. 리듬을 미세하게 ‘밀고 당기며’ 긴장을 만들었다.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협연 리허설 [빈체로 제공]

기교 과시로 흐르기 쉬운 카덴차에서도 조성진은 구조를 드러냈다. 왼손의 베이스 라인을 단단히 세우고, 오른손의 아르페지오는 그 위를 유영했다. 모든 음은 그가 설계한 궤적 위에서 한곳을 향해갔다.

2악장은 또 다른 세계였다. 베토벤이 훗날 후기 소나타에서 보여줄 고독의 그림자를 미리 품은 악장이다. 조성진은 페달을 극도로 절제하며, 음과 음 사이에 여백을 남겼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선율이 숨 쉬도록 했다. 현악기의 피치카토 위로 피아노가 들어설 땐, 안개 위로 한 줄기 빛이 새겨졌다. 피아니스트는 숨을 쉬듯 오케스트라를 움직였다. 뮌헨 필의 벨벳 같은 현악 사운드는 조성진의 맑은 터치와 대조를 이뤘다.

3악장에 접어들면 조성진의 개구지고 장난기 넘치는 얼굴이 드러났다. 조성진은 샤니의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돼 단원들과 ‘해학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조성진은 때때로 아슬아슬한 속도감을 즐겼고, 스타카토, 재빠른 악센트, 툭툭 튀는 리듬이 살아 움직였다. 그는 ‘청년 베토벤’을 추억한 것도, 연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 실제로 청년 베토벤으로 앉아 있었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조성진의 얼굴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전날의 베토벤이 투명한 수채화였다면, 프로코피예프는 기하하적 추상화였다.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협연 [빈체로 제공]

피아노 협주곡 레퍼토리 중에 가장 난해하고 폭력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1악장의 거대한 카덴차는 연주자에게 거의 육체적 한계를 요구한다. 조성진은 모든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는 무너지는 세계의 파편들을 주워 담듯, 불협화음의 잔해 속에서 기하학적 질서를 세워 나갔다. 건반을 내리찍는 손은 타악기의 냉혹함과 현악의 처절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1악장은 날렵하고 차갑게 출발했다. 그는 감정을 곧바로 폭발시키지 않았다. 건조하게 던진 선율 안으로 긴장을 축적했다. 응축된 에너지가 터져 나온 건 카덴차에 이르면서다. 카덴차는 이번 투어의 백미였다. 그는 고독하게 시작해 거대한 소리의 벽을 쌓아 올렸다. 손가락은 건반의 끝에서 끝을 광속으로 오갔다. 그때에도 복잡한 화성적 층위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의 중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성진과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의 협연 [빈체로 제공]

그의 왼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저음을 거칠게 몰아붙이지 않고 단단하게 구축했다. 그 위로 오른손의 폭발적인 패시지가 올라서자, 음악은 혼돈이 아니라 정교한 구조물이었다.

2악장 스케르초는 기계적인 정교함이 빛났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유니슨 옥타브 질주에선 단 하나의 음도 뭉개지지 않는 ‘강철의 테크닉’을 증명했다. 리듬에 미세한 탄력을 주며 추진력을 만들었다. 음은 쇳조각처럼 날카로웠고, 속도는 광기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3악장에선 다시 음색을 바꿨다. 당당하고 냉소적인 리듬은 은근슬쩍 들어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귀여운 요괴인 줄 알았던 음형은 위협적인 괴물로 모습을 바꿨다. 이윽고 마지막 악장에선 모든 것이 폭발했다. 피아노는 타악기처럼 울렸고, 오케스트라는 용광로가 됐다. 뮌헨 필의 금관은 압도적이었다. 독일 악단 특유의 어두운 밀도 위에 강철 같은 광택이 얹혔다.

조성진은 두 번의 연주에서 완전히 다른 시간을 살려냈다. 세계를 정복하기 전의 베토벤의 음악에선 빛과 패기, 유머와 우아함이 살아 움직였다. 반면 프로코피예프에선 20세기의 균열과 폭력이 꿈틀거렸다. 그 안엔 불안과 광기, 냉소와 비극이 솟구쳤다. 이토록 상반된 세계는 조성진만의 언어로 번역됐다. 조성진은 베토벤에선 구조 안의 자유를, 프로코피예프에서는 혼돈 안의 질서를 채굴했다. 이 상반된 두 얼굴은 조성진이라는 하나의 음악가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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