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존재와 인류의 조우…SF 거장은 ‘믿음’을 택했다 [리뷰]

10일 개봉 스필버그 신작 ‘디스클로저 데이’
‘SF 거장’이 꺼낸 또 하나의 외계인 이야기
로즈웰 사건·크롭 써클 등 음모론의 실체
인류와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의 충돌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SF(Science Fiction) 거장’은 멈추지도, 망설이지도 않는다. 그의 신작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는 지구 밖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를 놓지 않은 80세 노장의 집념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를 넘어 ‘우주전쟁’(2005) 등을 거쳐 온 스필버그표 외계인 이야기는 ‘외계 문명과 마주한 인류’라는 변주를 통해 주제의 반복이라는 지루함을 탈피한다.

수많은 음모로 점철된 ‘외계 문명’에 대한 의심들이 모두 사실로 밝혀졌을 때, 인류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폭로의 날(Disclosure Day)’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은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미지의 경험’이라기보다 자꾸만 곱씹게 되는 도덕적·철학적 질문처럼 느껴진다.

북한의 핵 도발로 인한 ‘3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전 세계를 엄습하던 어느 날, 캔자스시티의 기상캐스터 마거릿(에밀리 블런트 분)은 창문으로 들어온 홍관조를 마주한 뒤 설명하기 어려운 능력을 갖게 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는가 하면, 출근길에 만난 교통경찰과 방송국 PD의 마음을 불현듯 읽기도 한다. 이어 날씨 예보 도중 카메라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스튜디오에서 쓰러진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한편 다른 곳에서는 대니얼 켈너(조시 오코너 분)가 전 직장이자 비밀 유지 기업인 워덱스로부터 쫓기고 있다. 워덱스를 위해 일하던 중 외계인과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 대니얼은 80여 년에 걸친 ‘기록’과 ‘기기’를 들고 여자친구 제인 블랭컨십(이브 휴슨 분)과 도망 다닌다. ‘진실은 인류의 것’이라고 믿는 대니얼을 뒤쫓는 것은 ‘인류는 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믿는 워덱스의 수장 노아 스캔런(콜린 퍼스 분)이다. 노아는 ‘기기’를 이용해 원격으로 제인의 의식에 침투하며 끈질기게 이들의 행방을 추적한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모습이 전 세계에 공개된 뒤 마거릿 역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마거릿은 자연스레 대니얼의 존재를 직감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끝내 대니얼과 마거릿은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잡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인류가 수십 년 동안 은폐해 온 진실과 함께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간다.

영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외계 문명 관련 음모론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안는다. 그 안에는 로즈웰 사건, 크롭 서클, 미확인비행물체(UFO) 목격담 등 수십 년간 대중문화 속을 떠돌아다닌 이야기들이 있다. 스필버그는 이를 단순한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나타나는 두려움과 경외감의 근원으로 활용한다. 흩어진 의심의 조각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내는 솜씨는 왜 스필버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는지를 납득하게 만든다.

영화는 진실을 공개하려는 이들과 숨기려는 이들의 대립을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믿음의 충돌로 비춘다. 관객은 비교적 이른 시점에 ‘진실’을 알게 되며, 러닝타임 내내 ‘과연 이 진실은 공개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지 못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세상은 비인간 생명체를 학대하고 고문하며, 그들의 기술을 탈취해 온 인류의 추악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경우에도 진실은 여전히 모두가 누려야 할 물과 공기, 햇빛 같은 것일까(대니얼). 아니면 면역력이 없다면 결코 견딜 수 없는 바이러스처럼 작동하는 것일까(노아).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인상적인 것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낙관주의다. 극심한 분열 속에서도 스필버그는 인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는 줄곧 ‘경이로움’을 바탕으로 미지의 존재와 교감해 온 스필버그식 접근과도 일맥상통한다. 외계인들이 인류의 실험 도구로 전락하는 장면을 마주한 인류는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혼란을 멈춘다. 뉴스 앵커는 믿을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과 침묵 속에서 인류는 우주에서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정의한다. 결말부의 과정은 노아가 이야기한 극심한 혼란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에 가깝게 느껴진다.

스필버그는 영화를 진실과 폭로에 대한 성찰로만 끝내지 않는다. ‘디스클로저 데이’는 각각의 주인공을 통해 또 다른 믿음의 영역인 종교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까지 서사 속에 녹여낸다. 물론 이것저것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마지막까지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거나 매끄럽게 수습하지 못한 줄기들이 곳곳에 보이는 점은 아쉽다. 외계인과 마거릿은 고도의 기술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처럼 묘사되는데, 관객에 따라서는 이를 SF가 아닌 일종의 종교적 서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는 ‘폭로의 날’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그날을 향해 나아가는 로드무비에 가깝다. 초중반부까지 쫓고 쫓기는 서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어딘가 숨어 있는 주인공을 찾아 검은 밴이 들이닥치는 장면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덕분에 영화는 차고 넘칠 만큼 넉넉한 카체이싱 액션을 선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촬영과 앵글, 연출 역시 흠잡을 데 없다. 그럼에도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는 영화는 분명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는 언젠가는 해소해 줄 것이라는 관객의 ‘믿음’마저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결말 역시 다소 어리둥절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 실제로 인류가 채워 넣어야 할 열린 공간이라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건네고 싶은 것이 답이 아닌 질문이라는 사실은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설명되지 않는 여백이 많을수록 이를 설득력 있게 메워내는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만큼은 설명도, 답도 필요치 않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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