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1-2번 출입구 인근 최모(35) 씨가 생활하는 모기장. 최씨는 이 모기장에서 한 달 가까이 생활하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윤승현 수습기자] “1년이든 2년이든 계속 여기 있을 생각이라 한 달은 길다는 생각도 안 드네요.”
지난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가 부족해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뒤 시작된 집회가 좀처럼 출구를 못찾고 있다. 특히 용지 부족 투표소가 집중됐던 서울 송파구의 관내 투표함이 보관된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이 집회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곳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선거 운영을 질책하고 투표용지 반출도 막겠다며 한 달 가까이 자리를 지키는 이들까지 모여있다.
이달 1~3일 헤럴드경제가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서는 생업을 포기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달간 실외에서 보낸 시간을 보여주듯 이들의 손과 손목에는 토시 자국 그대로 경계선이 생겼고 얼굴은 붉게 그을렸다.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인근 공용 목욕탕에서 샤워하며 생활하고 있다.
![]() |
| 3일 오전 8시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아침 일찍 비가 내리자 집회 참가자들은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 채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윤승현 수습기자 |
최모(35) 씨는 결혼도 한 아기 아빠지만 최근 일을 그만뒀다. 핸드볼경기장 앞을 지키기 위해서다. 최씨는 경기장 1-2번 출입구 근처에 텐트를 치고 임시거처 삼아 한 달째 이곳에서 생활 중이다. 텐트 안에는 얇은 이불이나 먹다 남은 김밥, 커피도 있었다.
최씨는 “저는 여기 오래 있던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어제만 아이 체육대회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며칠 전 속옷 챙기러 집을 다녀온 것 말고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변에 사우나나 헬스장 가서 씻고 온다”며 “밥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원으로 나오고, 다른 참가자분들이 사 오시기도 한다. 여기 오래 있던 사람들끼리는 얼굴도 익혔으니 이제 많이들 친하게 지내며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에) 목소리 낼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싸우고 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완전히 물갈이되거나 해체돼야 한다. 먼저 그들의 입장 표명이 투명하게 이뤄지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장마가 온다고 하는데 또 어떻게든 적응하지 않겠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 |
|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만난 이승철 씨. 그는 지난 한 달 생업을 포기하고 올림픽공원에 나와 집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있다. 이영기 기자 |
페이스페인팅을 생업으로 삼는 이승철(62) 씨는 열흘 가까이 일을 쉬고 있다. 그는 “하루 출장 가면 20~30만원은 버는데 지금은 일을 미뤄두고 집회 현장으로 나오고 있다”며 “초기에는 나오기를 망설이다가 중학생이 사비로 물감을 사서 태극기를 그린다는 얘기를 듣고 꼭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참가 동기를 설명했다.
이씨는 “지난 주말에는 아이, 어른 구분할 것 없이 줄을 서서 5시간 내내 팔이나 얼굴에 태극기만 그렸다”며 “젊은 사람들이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과정이 투명하고 충실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오는데 이렇게 도울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라고 말했다.
공부나 취업을 미뤄놓고 생활 중인 20대들도 있었다. 성남에서 온 김모(25) 씨도 한 달 가까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양쪽이 그물망으로 된 텐트에서 쉬고 있던 김씨의 몸에는 모기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더위를 피해 민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그는 대화 내내 가려운 듯 팔과 다리를 긁었다. 그가 생활 중인 공간은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텐트촌이다. 텐트에는 ‘1-1 자봉(자원봉사) 쉼터’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3일째 텐트에서 생활 중이다. 중간 하루씩은 집에 가서 빨래하고 샤워하고 옷도 챙겨온다”며 “직전에는 6일 동안 숙식하다가 집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 |
|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텐트촌. 이영기 기자 |
이어 “식사는 주로 김밥이나 도시락, 햄버거 등 집회로 보내지는 음식을 먹으면서 해결한다”며 “자리를 지켜야 하니 멀리 나가지 않고 현장에서 먹고 있다. 또 인근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다른 참가자들이 샤워할 수 있게끔 해주셔서 씻고 있다”고 생활 모습을 전했다.
김씨는 “대학교 졸업 후 지방선거 직전까지는 대기업 취업 목표로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후부터는 집회에만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재선거를 하길 가장 원한다”며 “그게 제일 큰 목표고, 적어도 부정선거가 있다는 사실이 꼭 밝혀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학 직전까지 집회 현장에 생활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김모(22) 씨는 방금 머리를 감고 와 머리가 젖은 채로 모기장에 막 자리를 잡던 참이었다. 김씨는 “머리는 화장실에서 비누로 감고 몸은 대충 물로 적셔서 닦아낸다”며 “방금 씻고 왔더니 좀 개운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7월 중순에 유학을 떠난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야 미련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6월 8일부터 나오고 있다”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관련자들은 물러나야 한다. 특히 선관위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