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고개 들고 어깨 펴세요”…배재고 포용한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에 ‘참어른’ 호평

‘5·18 조롱 구호’ 파문 배재고 야구부, 일주일 만에 광주 찾아 공식 사과
이규연 교장 “아이들 잘못은 어른 책임…당당히 승부하는 게 멋진 용서”
양교 선수단,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및 국립 5·18 민주묘지 공동 참배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이 사과 방문한 서울 배제고등학교 야구부에게 발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다음에 광주일고 학생들 만날 때 정말 당당하게 마음껏 기량 펼치면서 멋진 승부를 펼쳐주는 게 여러분이 용서를 구하는 제일 멋진 모습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학생들과 어른들의 몫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잘못 이끈 건 어른의 책임이다”

고교야구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쳐 파문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인 가운데, 이들을 따뜻하게 포용한 이규연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 교장의 발언이 울림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배재고 야구부원 36명 전원과 학부모, 교직원 등 86명은 6일 오후 3시께 광주일고를 방문해 ‘스타벅스 가야지’ 등 부적절한 구호로 상처를 준 광주일고 선수단과 광주 시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지난달 29일 경기 중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만이다.

배재고 주장 A군은 자필 사과문을 통해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 광주일고 선수들과 학부모님, 광주 시민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야구를 떠나 인성과 태도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항상 깊이 반성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배재고 감독과 교직원들 역시 역사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참담한 사태임을 인정하며 재발 방지와 징계 절차 이행을 약속했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배재고등학교 교장이 사과문을 낭독하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이날 가장 주목받은 것은 배재고 학생들을 맞이한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의 격려였다. 이 교장은 눈물을 흘리며 들어오는 배재고 학부모들과 잔뜩 위축된 학생들을 향해 “어머님들께서 들어오실 때부터 눈물을 흘리고 학생들도 울먹이는 것을 보니 준비했던 말이 다 사라져 버렸다”며 “배재고 학생들,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따뜻하게 위로했다.

이 교장은 이어 “아이들을 잘못 이끈 건 어른들의 책임이며, 저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고 어른들의 책임을 통감했다. 이 교장은 또한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의 과정도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어른들은 어른의 몫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어 “배재고에 이승만 동상이 있고 광주제일고에 학생운동기념탑이 있는데 기념탑 휘호를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내렸다”며 “1929년 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할 당시 배재학당 학생들도 동참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학교로서 선배들의 전통과 역사가 한순간의 실수로 부정되는 일이 없도록 함께 노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화해의 몸짓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오늘을 용서와 화해, 새로운 출발의 첫걸음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장의 발언이 알려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말 존경스럽다, 진정한 어른이시다”, “잘못한 건 뉘우치고, 사과는 품어줘야 한다” 등 호평이 나오고 있다.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 강당에서 배제고 야구부 선수가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에게 전달할 사과문을 들고 있다. [연합]


양교 선수단은 사과식을 마친 뒤 광주일고 내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을 공동 참배했다. 이어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동해 참배하며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함께 학습했다.

이번 공동 참배에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광주교육감도 동행해 교육적 회복을 약속했다. 김 교육감은 두 학교의 화합을 지속하기 위해 오는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에 맞춘 친선 화해 경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앞서 배재고 일부 선수는 지난달 29일 경기 중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5·18 조롱 논란을 빚은 기업 광고 문구를 인용한 혐오 구호를 외쳐 공분을 샀으며, 학교 측은 관련 학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