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HBM 수요 기하급수적…AI에 수십조 투자”

나스닥 상장 첫날 인터뷰
“꿈이 현실된 역사적 순간”
“생산량 두배로 늘려도 부족하다고 해”
“공급부족, 당분간 지속”
“주가 버블? 기술은 실제”
AI 스택 기반 ‘서비스 제공업체’ 청사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 오프닝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처럼 공급 과잉과 부족이 반복되는 단순 경기순환 산업이 아니라, AI 수요가 장기간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10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첫날 CNBC, 블룸버그TV 등 외신 인터뷰와 뉴욕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입성을 두고 “역사적 순간”이라며 “SK가 15년 전 하이닉스를 인수했고, 이건 하나의 꿈과 같았는데, 이제 꿈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AI 시대의 메모리 수요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고객사들이 생산능력 확대 계획에도 더 많은 공급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5년 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도, 모든 고객이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생성형 AI 사용 증가가 메모리 수요를 구조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서 열린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 오프닝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최 회장은 반도체 업황이 과거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확실한 구조적인 변화는 이미 일어났다고 본다”며 “옛날과 같은 공급 과잉 패턴의 사이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은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순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수요 증가 속도가 공급 확대 속도를 크게 앞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급 부족이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반도체 공장을 짓고 웨이퍼 생산을 늘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전력·용수·부지 등 인프라 제약도 크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현재로선 수요 증가 속도가 우리가 공장을 짓고 공급을 늘리는 속도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발전 단계에 대한 비유도 내놨다. 최 회장은 “현재 우리가 마주한 AI는 겨우 4∼5살짜리 어린아이 수준”이라며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기억하고 저장해야 할 정보가 많아지듯, AI가 진화할수록 메모리 수요는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범용인공지능(AGI) 단계까지 가는 과정에서 학습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이 늘고, 그만큼 저장과 연산에 필요한 메모리 수요도 커진다는 설명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 오프닝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최 회장은 생성형 AI 사용이 늘수록 메모리 수요가 커지는 구조에도 주목했다. AI가 긴 대화를 이어가거나 복잡한 답변을 만들려면 이전 대화와 연산 결과를 저장하고 다시 불러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성능 메모리가 대량으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AI 서비스가 많아지고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HBM을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SK그룹 차원의 AI 투자 계획도 밝혔다. 그는 SK가 AI, AI 데이터센터, 관련 기술과 스타트업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예상 투자 규모를 “수백억달러”라고 설명했다. 메모리 제조에 머무르지 않고 AI 생태계 전반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의 사업 방향도 단순 메모리 제조업에서 더 확장될 것으로 봤다. 최 회장은 앞으로 SK하이닉스를 ‘메모리 서비스 제공 업체’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범용 메모리를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과 시장별로 맞춤형 스택을 설계해 최적화된 메모리 시스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시장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 오프닝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 내 추가 투자 가능성도 열어뒀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인디애나주에 40억달러 규모의 첨단 패키징 공장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최 회장은 그 외 미국 내 반도체 팹 투자를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 팀이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검토한다”는 표현이 곧바로 미국 공장 건설을 확정한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반도체 공장 입지와 관련해 전력, 초순수, 대규모 부지 등 조건이 중요하다며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이라면 미국이든 세계 어느 나라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투자 확대가 한국 투자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AI 시장 확대에 따른 우호적 환경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에도 적용된다며, 경쟁 속도도 더 빨라질 것으로 봤다. 그는 AI 시대의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라며 과거보다 훨씬 빠른 기술 개발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 효과에 대해서는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성과 인재 확보 측면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ADR 상장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와 금융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고, 미국식 스톡옵션 등을 활용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가 상승으로 거론되는 액면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겼다. 최 회장은 개인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액면분할 검토 여부에 대해 “요청이 더 오면 당연히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최고재무책임자(CFO)로부터 관련 안건을 보고받은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AI 투자 열기를 둘러싼 버블 논란에는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주식시장에선 ‘AI 버블’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AI 기술 자체는 실제”라고 말했다. 시장의 단기 과열 가능성과 별개로 AI 기술 변화가 메모리 산업의 수요 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취지다.

SK하이닉스는 나스닥 상장 첫 거래일에 공모가를 웃도는 가격으로 마감하며 미국 투자자들의 관심을 확인했다. 최 회장의 발언은 이번 상장을 계기로 SK하이닉스가 HBM 공급사를 넘어 AI 인프라 핵심 기업으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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