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유리한데 ‘30일 휴전안’ 동의 촉각
친러 행보 트럼프 고려땐 외면 어려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30일 휴전안’에 합의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리한 만큼 휴전을 원치 않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 유화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의식해 휴전안에 서명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휴전이 전술적으로는 실(失)일지라도 정치적으로는 득(得)이란 얘기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휴전안에 합의하면서 푸틴에게 상황이 복잡해졌다”며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승리를 원하는 푸틴의 욕망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욕구 사이의 긴장이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휴전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가 쿠르스크 지역 일부를 탈환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쿠르스크 지역은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가 기습 침공한 러시아 본토 지역이다.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를 최대 1376㎢까지 통제했으나, 러시아가 북한군까지 동원해 절반 이상 되찾은 상황이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쿠르스크주를 군복 차림으로 직접 방문해 군 수뇌부들과 회의를 열고 “쿠르스크 영토를 완전히 되찾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NYT는 “협상 없이 전투를 멈추는 것은 러시아가 유리한 상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푸틴이 휴전안에 서명할 유인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러시아의 요구 사항을 관철할 계획도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가입 ▷NATO 동유럽 내 활동 축소 등의 약속을 받아낼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 등 미 대표단과의 회담에서 “NATO 확장과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러시아 연방의 이익과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親)러시아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고려하면 휴전안을 외면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일리야 그라슈첸코프는 정치 분석가는 “크렘린궁이 전술적으로 보면 불리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리한 휴전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러시아가 평화 중재자로 보이려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뮤얼 차랍 RAND 연구소의 러시아 분석가도 러시아가 30일간의 휴전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가 조건 없는 단기 휴전을 원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러시아는 미국에서 보낸 특사를 만나는 등 휴전안을 검토할 전망이다.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두 국가의 휴전안 내용을 신중하게 연구하고 있다”며 “미국이 앞으로 며칠 안에 진행된 협상의 세부 사항과 합의된 이해관계를 러시아에 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같은 날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조만간 러시아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지난 11일 9시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 끝에 ‘30일 휴전안’을 발표했다. 두 국가가 합의한 휴전안에 따르면 휴전 기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미국 중재 아래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처리 문제, 러시아의 재침공을 예방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방안 등을 놓고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김빛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