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에 단돈 5만원…누구나 즐기는 비현실적 ‘섬 워케이션’

배로만 닿아 여전히 호젓한 ‘삽시도’
자전거로 풍광 즐기며 둘레길 한바퀴
인근 ‘고대도’ 국내최초 개신교 선교지
암반지대 ‘뱅부여’ 우유니 사막 연상


하늘에서 본 삽시도


충남 보령 앞바다에 나란히 떠 있는 두 섬, 삽시도와 고대도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 곳이 일과 휴식을 동시에 누리며 지친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공간이라면, 다른 한 곳은 역사와 종교적 발자취를 따라 마음을 정돈하는 고요한 쉼터다. 이들 섬으로 향하는 여정은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치유의 시작이었다.

호젓한 서해의 보물섬 삽시도

삽시도는 대천항에서 여객선으로 50분 거리에 있다. 2021년 12월, 대천항과 원산도를 잇는 보령해저터널이 개통된 이후 인근 섬들은 육지처럼 변해갔지만, 삽시도는 예전 같은 호젓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섬 이름의 유래를 물으니 섬의 지형에서 비롯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이내믹하게 꺾인 해안선의 생김새가 ‘화살을 꽂아놓은 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삽시도를 가장 잘 둘러보는 방법은 해안을 따라 조성된 ‘삽시도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섬 여행의 출발지로 삼을 만한 항구 주변의 어촌체험휴양마을에는 20여 대의 자전거가 마련돼 있고,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임미자 삽시도 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은 “아직 이용이 많지 않아 거의 새것”이라며 웃었다.

둘레길 구간 길이가 약 6㎞로 짧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면 바다 내음을 맡으며 시원한 질주가 가능하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상쾌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너른 서해가 마음을 열어준다.

천천히 달리는데 마을 횟집에서 검은 개 한 마리가 달려 나왔다. 토실하게 살찐 개는 가쁜 숨을 쉬면서도 한참을 따라온다. 섬을 찾은 이방인을 응원하는 듯한 힘찬 뜀박질에 절로 기운이 솟는다. 마을 사람에게 개의 이름을 묻자 ‘득실이’라고 한다. “주인 이름이 득점인데, 개는 점수를 잃는다고 해서 득실이라고 지었대요.” 주인의 빛나는 작명 감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자전거로 달리는 내내 왼편으로는 푸른 바다와 하늘이 활짝 열려 있었고, 담벼락마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이어졌다. 둘레길은 섬의 핵심 명소를 징검다리처럼 잇는다. 밀물 때는 고립됐다가 썰물에 바닷길이 열리는 ‘면삽지’, 썰물이 되면 맑은 생수가 솟아오르는 ‘물망터’, 세계적으로 희귀한 황금빛 소나무 변이종 ‘황금곰솔’ 군락, 모래가 곱고 물이 투명한 해수욕장까지 섬의 주요 콘텐츠를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다.

삽시도 어촌체험휴양마을 오피스와 항구.


비현실적인 비용으로 일하며 쉰다

삽시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하루가 빠듯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며칠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 지점에서 삽시도가 내미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 1박 2일에 단 3만원, 숙박과 체험, 공유 오피스 이용이 모두 포함된 ‘워케이션’ 프로그램이다. 체류 기간이 길수록 지원금도 커져서 4박 5일의 경우 총 5만원에 머물 수 있다. 요즘의 고물가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가격이다. 충남문화관광재단과 어촌어항공단의 지원금이 있어 이같은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전언이다.

삽시도의 워케이션 센터에 들어서자 탁 트인 창 너머로 서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이파이가 깔려 있고 테이블마다 콘센트가 있다. 업무가 끝나는 대로 불과 몇 발짝 거리의 바다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도시민에게는 더없이 큰 매력이다.

화면을 보던 눈이 지치면 창밖 수평선에 시선을 풀고, 자판에 묶인 손가락이 경직되면 갯바위 위로 걸음을 옮기면 된다. 섬이 주는 고립감이 집중력을 높이고, 업무 후 곧바로 해변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지친 몸과 마음을 채운다. 일과 삶을 억지로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의 근무가 삽시도에서는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무료 자전거를 빌려 타고 삽시도 둘레길을 돌아볼 수 있다.


업무 후에는 낚시를 비롯해 갯벌에서 바지락 캐기, 박하지 잡기, 냅킨공예 등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관광객이 유리 조각 등을 직접 주워 오면 체험비의 20%를 깎아주는 제도를 운영해, 재미와 환경보호의 의미를 함께 담았다.

하룻밤을 묵은 금솔펜션의 사장님은 “삽시도는 다른 곳에 비해 아직 때가 묻지 않아 좋은 섬”이라고 했다. 원래 경기도 일산에서 지내다가 아내를 따라 놀러 온 삽시도의 매력에 이끌려 정착한 지 12년이 넘었다는 그는 워케이션을 적극 권했다.

“외국계 IT 회사 직원도 머물고 있는데, 시차 때문에 일찍 업무를 시작해 일찍 마무리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기 것으로 쓴대요. 일할 것 가지고 몸만 오면 돼. 낚시든 체험이든 다 알려줄 수 있지.”

아는 사람은 이미 혜택을 누리며 삽시도를 찾고 있다. 지난해 삽시도를 방문한 워케이션 이용객 수는 70명에 달했고, 그 덕에 지역 소득은 사업 초기의 2023년 대비 53배 늘었다. 임미자 사무장은 “편리한 이동을 위해 자전거를 준비하고, 숙소마다 커피머신을 설치하고, 낡은 침구류는 호텔식으로 바꾸는 등 방문객 편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삽시도 워케이션은 길게 머물며 일과 휴식의 리듬을 찾고 싶은 이에게 특히 적합하다. 지원금 소진 시 가격은 달라질 수 있으니 서두르는 것이 좋다.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프리랜서부터 직장인까지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1인당 연 2회까지 신청이 가능하다. 비수기 섬 활성화 차원에서 진행되므로 성수기(7~8월)와 주말은 지원금 적용에서 제외된다. 신청은 워케이션 전문 플랫폼 ‘더 휴일’에서 하면 된다.

선교사 칼 귀츨라프의 동상. 김명상 기자


신이 사랑하는 섬, 고대도

삽시도와 함께 이웃 섬 여행을 겸하면 더욱 풍부한 일정이 만들어진다. 삽시도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고대도’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신교 선교가 이루어진 섬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행을 맞이한 정순목 목사는 “고대도에는 ‘갓애도(God愛島)’, 즉 신이 사랑하는 섬이라는 별칭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고대도는 종교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섬이다. 1832년 7월 25일, 영국 동인도회사와 용선 계약을 맺은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가 고대도 안항에 닻을 내렸다. 이 배에는 독일 프로이센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 칼 귀츨라프가 타고 있었다.

약 20일간 섬에 머문 칼 귀츨라프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을 하고 떠났다. 한문 성경과 전도 책자를 나눠주었고, 조선의 식량난을 안타까워하며 감자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전했다. 또한 서당 훈장의 도움을 받아 주기도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도 했다. 그의 방문은 한국 선교 역사를 쓴 다른 선교사보다 반세기 이상 앞섰고, 그 발자취는 한국 개신교 선교 역사를 새롭게 쓰는 단초가 됐다.

덕분에 고대도는 작은 섬에서 순례지로 거듭났다. 항구 주변의 고대도 공식 안내판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섬’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만큼 이 섬의 종교적 스토리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칼 귀츨라프 선교사의 업적과 일대기는 항구 주변에 있는 ‘고대도 선교센터’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칼 귀츨라프 기념공원’은 섬의 필수 방문지로 꼽힌다. 기념공원으로 가는 길은 좁다. 예산 문제로 경운기 한 대가 지나갈 만한 폭으로 설계됐다.

트럭으로 이동하던 중 차체가 벽에 긁히는 소리가 났지만, 운전자는 일상이라는 듯 그대로 갔다.

기념공원에 도착하면 커다란 검은 비석이 서 있다. ‘그가 우리를 깨웠고, 이젠 우리가 그를 깨운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그 주변에는 칼 귀츨라프가 수학한 교회를 형상화한 철골로 만든 예술 구조물과 그가 타고 온 배를 모티브로 삼은 큰 범선 조형물이 놓여 있다. 실물 크기에 가깝게 재현한 범선 앞에 서면, 닻을 내리던 당시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하늘을 담은 ‘뱅부여’ 전경.


귀츨라프 기념공원 인근에는 ‘뱅부여’라고 불리는 포토스팟이 있다. 썰물 때 바닷물이 멀어지면 드러나는 독특한 해중 암반 지대다. 하늘을 거울처럼 담은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에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든다.

하늘빛이 바뀌면 수면의 빛도 함께 바뀐다. 구름이 흘러가면 그 구름의 그림자도 물 위를 함께 흐른다. 그 평온한 풍경 안에서 방문객들은 순례자처럼 걸음을 늦추고, 삶의 속도를 다시 가늠하게 된다. 빠르게 연결된 세계와 잠시나마 거리를 두는 것, 그 단절이 섬을 특별한 여행지로 만들고 있었다.

보령=김명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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