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은 총재 “환율쏠림 대응” 처방에도…‘13일 연속 1500원’ 왜 안 잡힐까 [Deep Spot]

환율 여전히 고공행진…1550원 위협
이란전쟁 여파에 외국인 국장 순매도
NDF서 불투명 투기…한미 금리차도
구두개입 효과 미미…시장 개입 제한
원화 국제화 등 장기과제 달성이 관건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8일 열린 취임 후 첫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한국은행 제공]



“이 자리를 빌려 확실히 명확하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8일 열린 취임 후 첫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던 도중 작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말을 꺼냈다. 고공행진하는 원/달러 환율에 대해 설명하던 중이었다. 그는 “환율 쏠림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환율 쏠림은 용인하지 않겠다”며 연이어 단호한 표현을 내뱉었다. 특히 “의지도 있고 방법도 있다”고도 강조했다.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서 현재 과도한 환율 쏠림을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4일 야간거래에서 17년 만에 환율이 1540원선까지 닿으면서 시장의 공포감은 커지고 있다. 통화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구두개입’등 단기처방이 좀처럼 통하지 않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1500원대에 갇힌 원/달러 환율…네 가지 주요 원인

2월 말 이란전쟁 발발 이후 원/달러 환율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월평균 환율은 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1448.4원에서 3월 1492.5원까지 급등한 뒤 4월에는 1485원으로 떨어졌다가, 5월 들어 다시 1500원을 찍으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달 4일까지 환율은 주간 종가 기준 13거래일 연속 1500원을 넘겼다. 5일 장중(10시 28분) 1549.25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원화를 사려는 사람보다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환율은 한마디로 ‘원화와 달러의 교환 비율’이다.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달러를 원화로 사는 가격, 즉 환율이 오른다. 반대로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으면 환율은 떨어진다. 결국 달러에 대한 수요가 원화에 대한 수요보다 많은 것이 고환율의 기본 배경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외환당국은 최근 고공행진하는 원인으로 ▷이란전쟁에 따른 공급충격 ▷외국인 국내 주식 차익 실현 ▷NDF(역외 차액결제 선물환) 거래 ▷한미 금리차 등을 꼽고 있다. 네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란전쟁發 고유가 여전…외인 ‘팔자’도 환율 끌어올려

우선 이란 전쟁 이후 급등한 유가가 환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월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1·2월 배럴당 62달러, 68.4달러로 60달러대를 유지하다가 3월 이란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128.5달러로 두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후 종전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4월에는 105.7달러, 5월에는 103.1달러로 연이어 떨어졌지만, 6월 들어서도 90달러 중후반대를 이어가고 있다

유가 상승은 직·간접적으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한국 원유 수입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70%에 달한다.

특히, 95% 이상이 이란 전쟁의 한복판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운송된다. 원유는 달러를 통해 거래된다. 원유 공급 차질로 유가가 오르면 그만큼 같은 양의 원유를 사는 데 더 많은 달러가 필요해진다. 이는 곧 달러 가치를 높이면서 환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유가 상승은 한국의 경상수지(외국에서 벌어들인 돈과 외국에 지급한 돈의 차액)를 악화시키고 더 나아가 경제 성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빼내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오를 수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의 가장 직접적이고도 주된 원인은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행렬이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대규모로 처분해 받은 원화를 달러로 교환하는 수요가 늘면서 환율도 덩달아 오르는 것이다. 외국인 순매도란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인 금액보다 판 금액이 더 많다는 의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지난달 4일부터 이달 4일까지 총 21거래일 중 18거래일을 순매도했다. 특히, 7일부터 26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순매도’ 기록도 남겼다.

외국인이 최근 국내 주식을 계속 파는 이유는 우선 코스피 급등에 차익 실현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연초만 해도 4000대였던 코스피(유가증권) 지수는 불과 4개월 만에 9000도 넘보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늘자 ‘리밸런싱(비중 조정)’을 위해 수익 일부를 현금화한 것이다.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한국 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꼬리가 몸통 흔드는’ NDF 시장…한·미 금리차도

외환당국은 NDF(역외선물환)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NDF란 외화를 직접 거래하지 않고, 만기 시점 환율 차이만 정산하는 파생상품이다. NDF 시장에서는 만기에 현물을 인도하거나 계약 원금을 상호 교환하지 않고 계약한 선물환율과 지정환율 사이의 차이만을 지정통화로 정산한다.

당국은 최근 NDF 거래가 원/달러 환율을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NDF와 같은 파생상품은 증거금(보증금)만 내면 실제 금액의 수십 배까지 투자할 수 있다. 적은 돈으로도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조다.

만약 투자자가 원화 약세에 20배 레버리지에 투자했는데, 원화가 반대로 5% 강세가 되면 강제 청산(마진 콜)이 발생하고 투자자는 원화를 더 팔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화 약세가 더 심화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규모가 작은 NDF 시장에서 쌓인 레버리지가 국내 현물환 시장 전체를 흔들고 있다.

신현송 총재도 이 구조에 대해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해외에서 거래되는 만큼 외환당국이 그 규모나 리스크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한국 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낮은 것도 기본적으로 환율을 높이는 원인이다.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2.50%,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기준금리는 연 3.50~3.75%다. 두 나라 금리 차이는 최대 1.25%포인트에 달한다. 이 금리차는 두 가지 경로로 원화 약세를 부추긴다.

투자자로서는 금리가 낮은 나라의 돈을 빌려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의 자산에 투자해 금리차를 통한 차익을 노릴 수 있다.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싼 가격(이자)에 원화를 빌려 달러에 투자하는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수요가 늘며 환율이 올라간다.

한·미 금리차 확대는 국내 투자자들의 환 헤지 수요를 줄여 환율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환 헤지란 투자자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미리 특정 환율에 달러를 사거나 파는 계약을 말한다. 국내 투자자가 환 헤지 계약을 맺으면 만기 때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는 거래가 발생한다. 한·미 금리차가 클수록 헤지 비용은 커져 투자자들은 환 헤지를 하지 않고 달러 자산을 환율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한 채 투자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 추후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는 수요가 줄어 원화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구두개입 등 단기 조치 무색…남은 카드는

미국과 이란은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을 위한 막판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란 IRGC(이슬람혁명수비대)는 쿠웨이트의 미 공군기지, 바레인의 미 해군 5함대 기지 등을 공격하는 등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다. 신 총재는 “최근 원화 약세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중동 정세”라며 “중동 상황이 빠르게 진정되면 원화가 상당히 강세로 갈 여지가 있다”고 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도 차츰 줄어들 것으로 외환당국은 보고 있다. 신현송 총재는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 주식시장에서 리밸런싱을 하기 위해서 팔고 나갈 때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5월 말을 지나면 외국인 리밸런싱이 어느 정도 완료될 것”이라며 “외국인이 한국 비중을 다시 늘리는 방향으로 판단하면 매도세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당국이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용 수단은 제한적인 데다, 나머지 수단들은 중장기적인 과제인만큼 단기간에 환율을 효과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찮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가장 단기간에 할 수 있고 직접적인 방법이 구두개입과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 국민연금 외환스왑 등이다. 구두 개입이란 환율이 급등락할 때 당국이 시장에 개입해서라도 안정화하겠다는 의지를 말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외환당국의 잇단 구두개입에도 환율은 ‘요지부동’이다. 외환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외환시장에서도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했던 시절과 달리 구두개입의 ‘약발’이 세지 않다”고 설명했다.

스무딩 오퍼레이션은 한은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고 원화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매도 개입을, 국민연금 외환스왑이란 국민연금이 한은으로부터 직접 달러를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외환시장에 참여하지 않고도 달러를 구할 수 있어 환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일시적 쏠림에 대응하는 것인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나머지 방법들은 보다 중장기적인 과제다. 우선 NDF 거래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외환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는 방법이 있다. 이른바 ‘원화의 국제화’다. 외환거래 시간 연장, 해외 결제 확대 등을 통해 역외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국내 감독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내용이 골자다. 신 총재는 이에 대해 “빛을 쬘 수 있는 쪽으로 NDF 거래를 갖고 들어오려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기준금리를 높여 한·미 금리차를 축소하는 방법도 있다. 신 총재는 “한국은행이 점도표에 나오듯 금리를 계속 올리는 상황이 나온다면 금리차가 축소되고 원화에 대한 압력도 상당히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8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 인상 기조 전환을 공식화했다. 7명의 금통위원 중 2명이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냈고, 결정문에도 향후 정책 운용 방향에 “기준금리 인상 시기 등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적었다. 신 총재도 “향후 적절한 시기에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직접 언급했다.

이날 공개한 점도표에서도 금통위원 전원이 6개월 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두 차례 추가 인상을 내다본 위원도 최소 세 명에 달했다. 이 흐름이 현실화해 한미 금리차가 축소된다면 그만큼 환율 하방 압력도 커질 전망이다.

김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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