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고립은둔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하게 상담
날씨 등 일상 이야기로 상대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
죽고 싶다던 50대 이혼남, 취업 성공했을 때 기억에 남아
건네는 위로·응원 통해 내담자 인생 바뀌는 경험에 보람”
도입 1년 만에 4만건 상담…81% “외로움 말할 상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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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미(가명) ‘외로움안녕120’ 상담사가 콜센터가 있는 KT CS 서울사무소 염창사옥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손인규 기자 |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안녕하세요. ‘외로움안녕120’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셔서 전화 주셨을까요?”
“….”
“선생님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아직….”
“뭐든 좀 드시고 집 앞에 잠깐 나가보세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대화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평범한 대화조차 어렵다. 자신의 선택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편하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것이 외로움안녕120이다. 외로움안녕120은 서울시가 추진 중인 외로움·고립은둔 종합대책인 ‘외로움 없는 서울’의 일환으로 외롭거나 사회적 고립으로 도움이 필요한 시민에게 대화와 도움을 제공하는 전화상담 채널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누구나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상담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외로움안녕120 도입 1년을 맞아, 3월 ‘외로움안녕120 동행상담사 이야기’ 상담기록집을 발간했다. 기록집에는 시민과 상담을 진행한 동행상담사 16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헤럴드경제는 최근 KT CS 서울사무소 염창 사옥에서 김승미(54·가명) 외로움안녕120 상담사를 만나, 시민들이 그에게 털어놓는 외로움과 상담하며 느끼는 소회를 들어봤다. 김 상담사의 요청으로 해당 인터뷰는 본명 대신 가명을 사용해 작성됐다.
김 상담사는 원래 금융권에서 오랫동안 여신 업무를 담당했다. 평소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몇 년 전 퇴직 후 한 지역 치매안심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외로움안녕120 상담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다고 한다.
그는 “공고를 보고는 ‘이건 나를 위한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지원했다”며 “면접과 10일간의 교육을 받은 후 (지난해) 4월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외로움안녕120 콜센터가 있는 KT CS 염창사옥에는 현재 총 17명의 상담사가 근무 중이다. 이들은 ▷오전(오전 8시~오후 5시) ▷오후(오후 1~10시) ▷심야(오후 10시~익일 오전 8시), 3개조로 나눠 24시간 서울시민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김 상담사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오전조로 근무 중이다.
김 상담사는 하루 13~14건의 상담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은 20대 고립 은둔 청년부터 실직한 중년 가장, 자녀를 다 키워 출가시킨 70대 노인까지 상담 대상과 주제가 다양했다.
김 상담사는 “외로움안녕120은 단순히 정보를 안내하는 곳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를 하는 곳이다. 연령, 직업, 환경, 고민 등 내담자(상담 전화를 건 사람)마다 스토리가 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매뉴얼을 외워서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는 아니다”면서도 “상담 시 공통점은 전화를 건 모든 분이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해 위축된 상황에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진 내담자와 상담에서는 첫 마디가 가장 중요하다”며 “억지로 고민을 끌어내려고 하기 보다 처음에는 날씨나 식사처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시작해 마음의 문을 열어 본다”고 털어놨다.
김 상담사는 수많은 상담 중 한 중년 남성의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한 번은 이혼한 50대 남성 분이 전화하셨는데 교통사고로 다리까지 다친 어려운 상황에 놓이다 보니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셨다”며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매일 배달 음식만 드신다는 얘기에 ‘계속 배달 음식만 드시지 말고 아주 쉬우니까 미역국, 콩나물국 한 번 끓여 드셔보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회상했다.
이후 요리를 시작한 이 남성은 차츰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됐고 점점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취업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위로와 응원이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김 상담사는 떠올렸다.
김 상담사는 “또 한 번은 취업이 안 돼 부모, 친구와 연락도 다 끊고 지내던 고립 은둔 청년이 전화를 걸어왔다”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한다기보다 그냥 동네 누나처럼 위로하고 용기를 내라는 말을 해줬다. 그랬더니 어느 날 ‘자기가 드디어 취직이 돼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해왔다”고 말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누군가에게 건넨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삶을 이어나가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서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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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에서 운영 중인 ‘서울마음편의점’ 내부. ‘외로움 없는 서울’ 종합정책으로 일환으로 운영되는 곳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해 라면 등 간단한 음식을 먹고 대화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공간이라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 [서울시 제공] |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전화를 하다 보니 때로는 힘든 전화를 받을 때도 있다. 김 상담사는 “다른 곳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걸 외로움안녕120에 전화를 걸어 푸시는 분들이 있다”며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욕설을 하는 건 아니지만 거친 표현을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담 전화을 받으면 김 상담사는 잠시 ‘자리 비움’ 버튼을 누른 뒤 헤드셋을 뺀다. 그는 “잠깐 사무실을 나와 근처 공원을 걷거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며 “처음에는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음 콜을 받는게 두렵기도 했지만 이런 분은 아주 극소수다. 대부분은 본인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저는 이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런 위로의 말이 간절했는지 외로움안녕120에 의지하는 내담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 상담사는 “어떤 분은 아침에 복지관 가는 길에 ‘나 힘 나는 말 좀 해달라’고 전화를 하셨다가 또 오후에는 ‘나 기분이 우울하니 재밌는 얘기 좀 해달라’고 하는 분도 계셨다”며 “많은 분은 하루에 20~30번 전화하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외로움안녕120은 한 번 상담이 30분으로 제한돼 있지만 횟수 제한은 없다. 이에 서울시는 보다 많은 시민이 외로움안녕120을 고루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명(전화번호)당 하루 상담 전화를 5번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김 상담사는 외로움이 꼭 1인 가구나 독거노인처럼 홀로 지내는 사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라고 했다. 김 상담사는 “상담하다 보면 아주 평범한 삶을 사는 분들도 가정 내에서나 직장 내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외로움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감정이다. 조금이라도 외롭다고 느끼거나, 어떤 감정이 드는데 누군가 물어볼 대상이 없을 때 주저 없이 외로움안녕120에 전화를 해도 좋을 거 같다. 그런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서비스를 시작한 외로움안녕120은 1년 만인 올해 3월 말 누적 상담 건수 4만건의 상담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125건의 상담이 이뤄지는 셈이다. 연령별로 보면 주 이용자는 40~60대, 중장년층이 77.6%로 가장 많았다. 청년층도 18.8%로, 이용히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용자 대부분은 ‘외로움을 털어놓을 대화상대가 필요해 서비스를 이용(81%)’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상담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외로움안녕120 이용자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6점이었다.
외로움안녕120은 올해 하반기 외로움·고립은둔 시민을 지원하는 거점공간 ‘서울잇다플레이스(가칭)’로 자리를 옮겨 전용공간을 갖추고 대면상담까지 서비스 영역 확대를 검토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