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쟁, 승용차서 트럭으로…테슬라 ‘세미’ 양산 시작

한국자동차연구원, 테슬라 세미 양산 의미 분석
1회 충전 805㎞·30분 충전
디젤 장거리 물류 대체 도전
경제성이 관건
국내 중대형 상용차 전동화도 주목


테슬라 대형 전기 트럭 ‘세미’. 테슬라는 지난 4월 미국 네바다 공장에서 세미 양산을 시작했다. [테슬라 제공]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승용차 중심으로 전개돼 온 전기차 경쟁이 대형 트럭 시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가 대형 배터리 전기 트럭 ‘세미(Semi)’ 양산을 시작하면서 디젤 트럭이 장악해 온 북미 간선 물류 시장의 전동화 가능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8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간한 산업분석 보고서 ‘대형 트럭 전동화의 서막을 여는 Semi’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4월 미국 네바다 공장에서 세미 양산을 시작했다. 생산 목표는 연간 5만대 수준이다. 세미는 2022년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소량 공급된 이후 기술 개선을 거쳐 본격 양산 단계에 들어섰다.

세미는 미국 상용차 가운데 가장 크고 무거운 ‘클래스8’에 해당하는 대형 트럭이다. 이 차급은 북미 내륙 물류에서 대형 물류 거점 간 간선(장거리) 이동을 맡는 핵심 운송 수단으로, 현재는 디젤 파워트레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적재량과 장거리 운행 능력이 중요한 만큼 전동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배터리 무게와 충전 인프라, 경제성 문제로 본격적인 전환은 쉽지 않았다.

테슬라 대형 전기 트럭 ‘세미’의 주요 사양 및 특성. 세미는 1회 충전으로 최대 약 805㎞를 주행할 수 있는 대형 배터리 전기 트럭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제공]


보고서는 테슬라 세미가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경량 설계와 고효율 구조를 앞세웠다고 분석했다. 세미 롱레인지 모델은 822㎾h급 고전압 배터리를 탑재하고, 1회 충전 시 최대 500마일, 약 805㎞를 주행할 수 있다. 화물을 가득 실은 조건에서도 에너지 효율은 1마일당 1.7㎾h 수준으로 제시됐다. 고속 충전기인 메가차저를 이용하면 약 30분 만에 배터리 60%를 충전할 수 있다.

세미의 트랙터 공차 중량은 약 2만3000파운드, 약 10.4톤이다. 트레일러에 약 4만5000파운드, 약 20.4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돼 동급 디젤 트럭과 비교해도 적재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테슬라가 질량 에너지 밀도가 높은 3원계 4680 배터리를 사용하고, 기계·유압 장치를 줄이는 방식으로 배터리 중량에 따른 손실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구동계도 효율 중심으로 개선됐다. 초기 모델보다 구동 모터 수를 4개에서 3개로 줄이고, 48V 저전압 아키텍처와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25㎾급 전동식 보조동력장치 등을 적용해 중량을 추가로 낮췄다. 중앙 운전석 배치와 공기역학적 전면 설계로 항력계수도 0.4 수준까지 낮췄다.

핵심은 경제성이다. 대형 트럭은 차량 가격보다 연료비와 정비비 등 총소유비용(TCO)이 사업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보고서는 세미가 심야 전력 활용과 전기 구동계의 낮은 정비 부담을 바탕으로 디젤 트럭 대비 운영비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Class-8 트럭의 실사용성과 관련된 주요 요소. 운전석 뒤 휴식 공간 유무와 운전석 배치 방식은 장거리 운송 차량의 사용성을 좌우하는 변수로 꼽힌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제공]


테슬라가 제공하는 차고지용 충전기를 심야 시간대에 활용할 경우 전력비는 마일당 0.24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디젤 트럭의 유류비를 마일당 0.50달러로 가정하면 연료비 차이가 크다. 보고서는 차량 가격, 유류비, 정비비 등을 반영할 때 세미가 누적 주행거리 51만3000㎞를 넘는 시점부터 동급 디젤 트럭 대비 비용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실제 운송 현장에서의 검증은 남아 있다. 세미의 TCO 절감 효과는 배터리와 구동계 부품의 내구성, 고장 발생 시 정비 속도, 충전 인프라 접근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테슬라는 세미의 배터리와 구동계 부품에 대해 100만마일 보증 조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형 물류 사업자 입장에서는 운행 중단 시간도 비용으로 직결된다.

운전자 사용성도 변수다. 세미는 운전석 뒤에 휴식 공간이 없는 데이캡 구조다. 장거리 운전자가 차량 안에서 수면을 취하는 슬리퍼캡 방식에 익숙한 시장에서는 운용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중앙 운전석 구조도 시야와 공기저항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창문을 열고 외부와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불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테슬라 세미의 단기 성과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시장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형 트럭은 도로 환경과 운행 패턴, 규제가 지역마다 달라 승용차처럼 전 세계 공통 모델로 확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테슬라가 유럽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고, BYD와 중국계 스타트업 윈드로즈 등도 대형 전기 트럭을 내놓고 있어 글로벌 경쟁은 점차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형 상용차 친환경화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배터리 전기차(BEV), 수소전기차(FCEV), 수소 내연기관차(HICEV) 등이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세미가 실제 물류 현장에서 충분한 경제성과 신뢰성을 입증한다면, 대형 트럭 전동화에서 배터리 전기차의 입지가 한층 커질 수 있다.

국내 산업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한국은 국내 화물 수송에서 도로 물동량 비중이 92.7%에 달한다. 수송 작업량 기준으로도 도로 비중은 79.3%다. 트럭 운송 비용이 제조업과 유통 산업의 비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환경 측면에서도 중대형 상용차 전동화는 중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트럭과 버스는 전체 차량 대수의 8% 미만이지만, 도로 수송 부문 이산화탄소 직접 배출량의 35% 이상을 차지한다. 운행 대수에 비해 배출 영향이 큰 만큼 친환경 전환 효과도 크다는 의미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조사실장 “그간 국내 친환경차 산업은 보급 기반과 산업 파급효과가 큰 승용차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며 “물류와 환경 비용의 접점을 고려할 때 중대형 상용차 전동화 이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