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인심 · 情이 모락모락…부족한 입맛까지 채운 ‘한국인의 밥상 ’

교양다큐 불구 시청률 10%대 넘어
과장된 리액션·홍보 위주 먹방 아닌
향토음식 속 역사·사람 이야기 담아

진지·진솔한 색깔 타프로그램과 차별화
최불암의 구수한 진행도 잘 어울려

KBS ‘한국인의 밥상’은 교양프로그램인데도 시청률이 꾸준히 10%를 넘고 있다. 지상파의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것만으로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프로그램의 힘은 여전히 살아있다. ‘한국인의 밥상’은 기존 음식프로그램이 갖지 못한 미덕이 있다. 흔히 음식, 맛집, 요리프로그램이 다양한 음식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식당을 홍보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은 음식점이 아닌 진짜 음식을 소개하는, 본질에 충실한 음식다큐멘터리다.

요즘 유행하는 ‘먹방’은 맛있다는 과장된 리액션과 먹는 모습을 중시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이 한국 음식 원류의 맛을 이어가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지역의 음식을 통해 풀어내는 향토사이자, 미시사(微視史)다.

각 지역의 대표음식 속에 숨겨진 이야기와 그 음식의 원류, 함께해온 사람들의 역사, 고유의 조리법 속에서 찾아낸 우리 맛의 과학과 우수성 그리고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음식문화를 담아낸다. 그래서 음식의 맛이라는 기능적인 효과 외에도 시골장터 같은 인심과 정(情)이 느껴진다. 특히 도시민에게는 맛도 좋겠지만 사람의 맛이 느껴져 훈훈해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 마음 속에 잊고 살던 것을 일깨워 주는 부분이 있다. 이 중에는 사라져가는 향토음식도 많다. 

KBS‘ 한국인의 밥상’은 교양프로그램인데도 시청률이 꾸준히 10%를 넘고 있다. 지상파의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것만으로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프로그램의 힘은 여전히 살아있다.

얼마전 방송된 ‘잡곡의 힘’은 이 프로그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편이었다. 잡곡에는 어머니의 고단한 인생이 녹아있다. 어머니의 정과 강인함도 묻어있다. 음식에 이런 깊은 아련함과 감동이 있는지 몰랐다. 율무단자, 녹부부침개, 기장인절미, 피죽, 옥수수시루떡 등 요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식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과거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는 가난해서 잡곡을 먹었다지만 요즘은 건강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잡곡이다. 세대 간 정서가 완전히 다르다.

‘합천가을밥상’편은 우리 향토음식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주었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송이버섯의 연관성을 알 수 있었다. 들깨송이, 토란대, 부각, 제피나물, 무말랭이 생절이, 무잡채, 보리등겨장, 밤죽, 밤묵 등 이름도 생소한 향토음식이 많다. 모두 그 지역의 자연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건강에 좋은 음식이다. 우리들 부모의 가난과 눈물의 역사가 배어있는 ‘고냉지밥상’편도 인상적이었다.

‘여름강의 추억, 아버지의 손맛’편은 견지낚시나 천렵을 해서 가족에게 어죽을 끓여주는 아빠의 모습이 가족의 정과 추억, 함께 사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강가는 남자의 부엌이라고 했다. 집에서는 음식을 만들지 않는 아빠도 강가에서는 음식을 손수 장만했다. 피곤한 남자들이 보면 좋았을 코너였다. ‘남자의 강은 위로다’라고 마무리했다. 사실 산세 좋은 자연에서 나오는 식재료를 요리해 먹는 것만으로도 ‘도시인의 로망’인데,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담아내니 더욱 재미있다.


진행자 최불암과 시골의 매칭은 아주 잘 어울린다. 푸근하고 구수한 그의 진행은 넉넉한 음식인심이 느껴지고 신뢰감을 준다.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더 쉽게 한다.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서정적 영상과 적절한 음악이 가미돼 깔끔한 프로그램이 됐다.

혹자는 ‘한국인의 밥상’이 음식을 너무 거창하고 진지하게 소개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진지해도 된다. 그렇다고 무겁지는 않다. 최불암이 시골 어머니ㆍ아버지와 음식을 함께 먹고, 가족의 안부도 묻고 하는 모습이 정겹다. ‘한국인의 밥상’은 지역의 음식 유래를 찾아 나서는 진지하고 지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런 진지함과 진솔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색깔을 못 만들었을 것이다.

음식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패스트푸드가 넘치고, 음식 본연의 맛을 잃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요리하는 아날로그적인 ‘한국인의 밥상’이 음식프로그램과 음식문화에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향토음식을 찾아 나서는 이 작업은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어서 지역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 풍속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이것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까지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엄밀함을 유지해야 한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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