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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드림플레이의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 1970년대 도시 빈민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민중의 삶과 애환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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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긴 작품이 올려진 경우가 간간히 있었지만,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었다. 시발점은 지난해 7월 연희단거리패가 선보인 ‘원전유서’. 쓰레기 매립지 거주민들이 지번(地番)을 요구하면서 겪는 혼란을 묘사한 이 작품은 4시간 30분이라는 엄청난 공연 시간으로 관객을 한 번 놀라게 하고, 뛰어난 작품성으로 두 번 놀라게 했다. 지난 4월 3~5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연출의 ‘파우스트’는 2번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총 4시간 짜리였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 1부만 무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한계에 좌절한 노학자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순진한 처녀 그레트헨을 파멸로 몰아 넣는 과정은 간략하게 그려내기 어려웠다. 지난 4월 26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린 연극 ‘피카소의 여인들’은 2시간 40분동안 피카소가 사랑했던 여인들의 독백을 차례로 펼쳐놨다. 총 8명의 여인들 중 4명만을 골랐지만 한 명에게 30분씩만 배당해도 인터미션을 포함하면 2시간이 훌쩍 넘었다. 오는 5월 13일부터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극단 드림플레이의 ‘장석조네 사람들’도 공연 시간이 3시간 10분이나 된다. 공연 시간을 대폭 줄여볼까도 고민했지만, 지난해 초연했을 때 관객의 반응이 좋아 자신감을 얻었다. 이렇게 연극이 길어지는 이유는 뭘까. 연극 관람객층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제작자들도 자신감을 얻고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대학로에서 연극 기획ㆍ홍보 담당자로 일하는 김옥진 씨는 “전반적으로 연극 작품의 공연 시간이 길어졌다기보다는, 공연 시간이 긴 작품이 늘어났다”며 “공연 형태와 관객층이 다양화됨에 따라 공간, 시간 등 기존 연극의 제약을 넘어선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본과 연출 분야의 발전 등 작품의 질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관객은 좋은 작품을 찾는다’는 단순한 진리다. ‘원전유서’가 4시간 동안 관객을 붙잡아 놓을 수 있었던 데에는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 김지훈과 관록 있는 연출가 이윤택의 공로가 컸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동아연극상 5관왕(희곡상, 연출상, 연기상, 무대미술상, 기술상), 대한민국연극상 등을 휩쓸었다. 네크로슈스의 ‘파우스트’는 독특한 상징과 은유로 관객을 압도했다. 소도구와 음향, 조명, 음악 등을 이용해 공감각적 자극을 이끌어내는 네크로슈스의 연출법은 국내에도 상당수의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작가 김소진의 탄탄한 원작에 기대고 있다. 무대에서 사용될 대사의 95% 이상을 소설 속 문장에서 그대로 차용했다.
김소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