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정도전‘이 정통사극을 살려낸 것은~”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정도전‘은 정통사극인데도 스피디하고 옛날 이야기인데도 올드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작가의) 글이 와닿았다.”

KBS 사극 정도전’이 끝난 지 제법 됐지만 이성계를 연기한 배우 유동근은 그 많은 감정을 토해내느라 힘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았다. 연기경력이 34년인 이 중년배우는 아직 초최한 얼굴이었지만, ‘정도전’에 관한 질문에는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에게 “글이 와닿았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했다.

“인물과 인물의 대립이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황의 논리로 접근하는 극작법이 좋았고 놀라웠다. 논리와 논리의 대결이랄까. 시청자로 하여금 각자의 논리를 이해하게 하고, ‘이 놈은 분명 나쁜 놈인데 어떤 면에서는 이해되는‘, 그런 장치들이 좋았다. 그렇게 해서 역사와 인물이 계속해서 해체되고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았다. 흔히 정통사극이 역사적인 사건과 이야기만 보는 우를 범하기도 하는데, ‘정도전‘은 그런 걱정을 절묘하게 피해나갔다. 역사가 조금 앞서 나간다 싶으면 인간 고리를 붙여주는 식이다.”


‘정도전’은 정통사극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통사극 출연 경험이 많은 유동근에게 자연스럽게 이 점을 물어봤다.

“정통사극이 역사를 강제로 시청자에게 알리려고 하면 곤란하다. 가르치려고 하게 되면 소통이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신봉승 선생님도 말씀했듯이, 역사가 앞서가서는 안되고 인간관계속에서 역사가 따라와줘야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정현민 작가와 강병택 PD가 큰 일을 한 거다.”

유동근은 그런 속에서 이인임, 이성계, 정몽주, 하륜 같은 인물들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배우는 주어진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이다. 좋은 배우는 좋은 작가와 좋은 연출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연출진과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단다.

유동근이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을 연기했던 1996년이후 한동안 KBS 대하사극은 150부작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50부작으로 줄어들었다.

”당시 스토리를 다 운반하지는 않았지만, 잘 짜여지고 준비된 응집력의 결과라고 본다. 배우 작가 연출의 일관된 호흡과 마음이 ‘정도전‘이 시청자에게 사랑받은 이유다.”

TV로 ‘정도전’을 시청했던 유동근의 아내 전인화도 “작가와 연출, 배우의 합이 하나가 된 걸 느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작가와 강 PD는 정통사극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정통사극의 틀을 깼다. 기존 정통사극의 호흡과 스피드를 벗어났다. “일련의 퓨전사극의 변칙적 스피드를 쓴 것일 수 있다. 세월을 넘나들어도 이해가 됐다. 이는 굉장히 힘든 작업이다. 드라마틱한 신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배우들에게는 상당한 감정을 요구하게 된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작가의 서술방식과 PD의 작업이 만만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글이 좋다고 해도 영상물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

“강 PD는 끝까지 파헤치는 스타일이다. 외형은 그렇지 않게 생겼는데, 신마다 어디까지 토해내야 ‘야마‘(주제)가 생기는지를 안다. 결정적 한 수를 짚는 스타일이다. 현장에서 신마다 연기가 끝나고도 카메라를 끄지 않고 계속 담는다. 연출도 진이 빠진다. 그러다 그 이상의 것이 편집되면 전화가 온다. 형님 하나 건졌다고. 그런 공동 작업이 무척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작가나 PD, 그리고 내가 끝까지 인간적인 이성계를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것이다. 매주 이성계 하기가 힘든 숙제였다. 방법은 열심히 떠들며 연습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

유동근은 이성계라는 인물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기존 사극과는 분명한 차별화가 이뤄져 있었고,시놉시스에 사투리를 쓴다고 한 줄 쓰여있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고 했다. 막상 함경도 사투리를 쓰려고 하니 어려웠지만, 사투리 하나로 동북면 촌뜨기 이성계가 확실하게 부각될 수 있고, 부모 고향이 함경도인 임동진 선배(원래 최영 장군으로 캐스팅됐음)가 함경도 사투리가 정이 있고 괜찮다고 해 용기를 냈다. 사투리를 가르쳐준 탈북자 출신 백경윤 단국대 교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유동근은 “이성계가 정몽주와 정도전을 좌우에 둔다는 포석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도전이 실패한 것은 재상정치를 꿈꾸고 비전도 있었지만 혼자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면서 “드라마가 조금 더 진행됐더라면 정도전 죽음의 여운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의 향기를 좀 더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방원(안재모)과 민씨(고나은)가 배우로서 좀 더 성장할 수 있지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동근은 KBS 주말극 ‘참 좋은 시절’ 후속으로 방송될 새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에 캐스팅됐다. “기존 드라마에서 봤던 아버지가 아니다. 아이들과 소통이 잘되고 유쾌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다. 자식들에게 세상사에 대해 던지는 대사도 들어볼만한 하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쉽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갈등은 내가 나름 공부하면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도 매주 감독과 ‘정도전‘때처럼 의논하고 있다. 노력 이외는 답이 없다.”

유동근의 자식은 1남 1녀, 둘 다 대학생이다. 한 명은 미술을 공부하고, 한 명은 음악(클래식 작곡)을 전공한다. 그는 “어떤 아버지가 되고싶냐”는 질문에 “편안하게 친구처럼 느낄 수 있는 아버지, 위에 있는 아버지 같지가 않고, 옆에 있는 아버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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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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