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 시장 흔든 ‘다크 문’…중심엔 ‘엔하이픈 유니버스’

애니플렉스가 선택한 최초의 K-팝 IP
엔하이픈 세계관 애니메이션에 접목
권리는 하이브에…‘케데헌’식 유출방지

 

일본 애니플렉스(Aniplex)가 하이브와 손 잡고 선보인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 오른쪽 사진은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한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 옥외광고. [하이브 제공]

‘붉은 달’이 떠오른다. 늙지 않는 소년들,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영원을 살아야 하기에 끝없이 상실을 반복한다.

K-팝 그룹 엔하이픈(ENHYPEN)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뱀파이어 소재의 웹툰 ‘다크 문(DARK MOON)’. 이 이야기는 K-팝 아이돌의 세계관을 확장한 ‘흔한’ 서사물 중 하나로 보일 수 있으나, 애초 아이돌 ‘부속 콘텐츠’와 결이 다르다. 팬서비스용 외전이 아닌, 완결된 장르 문법을 가진 고딕 판타지다.

이 세계에서 소년들은 뱀파이어이자 늑대인간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다. 웹툰은 인간 소녀 수하를 둘러싼 운명과 금기, 구원과 파멸 구조의 학원 판타지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 안엔 엔하이픈이 데뷔 초기부터 반복해 온 감정의 흐름을 담았다. ▷경계 위의 청춘 ▷불안정한 소속감 ▷끝없이 변해가는 존재의 공포 ▷밤과 성장통의 이미지 등이다.

이 서사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공룡인 애니플렉스(Aniplex)가 움직였다. 한국 K-팝 기획사가 만든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 최초 제작한 것이다. 지난 1월, 일본 지상파 채널인 도쿄 MX(TOKYO MX)와 아베마(ABEMA)를 통해 애니메이션 ‘다크 문: 달의 제단’이 공개됐다.

제작을 맡은 쿠로사키 시즈카 애니플렉스 프로듀서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웹툰을 봤을 때 하이브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 K-팝 아티스트 엔하이픈을 모티브로 한 스토리라는 것도 몰랐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시즈카는 “로맨틱하고 장엄한 세계관에 매료됐는데, 알고 보니 음악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는 하이브가 2차원(2D) 콘텐츠를 진지하게 대하며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하이브처럼 음악과 스토리,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은 앞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에 매우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즈카 프로듀서는 한국 웹툰 IP의 강점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스토리’를 꼽았다. 그는 “플롯과 캐릭터 묘사, 에피소드 구성, 독자의 감정을 끌어내는 방법 등 요소들이 폭넓은 연령층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돼 있다”며 “일본 만화가 긴 연재 속에서 캐릭터를 축적해 간다면, 한국 웹툰은 초반부터 감정 몰입의 밀도가 굉장히 높다”고 분석했다.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서브컬처 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애니메이션협회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2014년 1조6400억엔(약 106억달러)에서 2023년 3조 3465억엔(약 213억달러)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소니그룹은 전 세계 사용자 1억2000만명, 유료 구독자 1700만명에 달하는 애니플렉스와 크런치롤을 양축으로 글로벌 IP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엔하이픈은 애니메이션 공개와 맞물려 복귀하고, 스페셜 앨범 ‘메모라빌리아(MEMORABILIA)’를 통해 웹툰 스토리를 음반으로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적 가치는 수익 구조와 권리관계에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누적 5억 뷰를 돌파하며 가치를 1조 원 이상으로 평가받았다. 그럼에도 원천 IP 권리는 소니픽처스와 넷플릭스가 보유해 장기적인 수익은 해외 플랫폼이 모두 가져갔다. 이에 국내 콘텐츠 업계에선 ‘IP 유출’ 논란이 본격화됐다.

하이브의 ‘다크 문’ 모델은 기존의 제작 방식과는 다르다. IP 기획부터 웹툰, OST, 머천다이즈 등 원천 권리 전반을 하이브가 소유한다. 애니플렉스는 애니메이션 제작과 콘텐츠 공개 등 확장 과정의 강력한 파트너로 함께 했고, 하이브가 ‘원작자(IP Holder)’로서 중심축을 맡아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했다.

박태호 하이브 넥스트엔터테인먼트 사업 대표는 “하이브가 권리를 위탁하고 수익만 분배받는 방식 대신 직접 스토리 IP 홀더가 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IP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며 “IP 권리를 확보해야만 팬 경험 설계에 대한 완전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만 더 좋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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